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TV 없는 세상에 살다, TV OFF!

요즘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쥐여주고 동영상을 보게 하고 어른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가족과 함께 식사하러 갔을 때 아이들이 칭얼거리는 것이 싫어서 스마트폰을 꺼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영상을 찾아 보여주곤 했습니다. 심지어 두 돌도 안 되었던 딸아이는 집에서 '뽀로로'를 보다가 끝날 때 자막이 올라가면 뛰어가서 자막을 손으로 잡고 울기도 했지요. 집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결국 마지막엔 더 보겠다는 아이와 자야 한다고 하는 엄마와의 싸움으로 끝났습니다. 그 싸움으로 아이가 울다가 잠을 자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인내심을 잃은 아이들이 보채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해서 2011년 크리스마스쯤, TV가 고장 났다고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TV를 틀지 않았습니다. 벌써 만 2년이 넘었네요. 그러다가 꼭 TV를 보아야 하는 경우(예를 들면 태풍과 같은 재난방송이나 야구 한국시리즈)는 제가 DVD를 가져와서 보여주는 거라고 아이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White lie'라 해도 될까요? 그러다 보니 아이가 심심할 때 뜬금없이 "태풍 왔으면 좋겠다" 또는 "오승환 아저씨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번씩 제가 TV를 금지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흔히 TV를 바보상자라고 하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고 시대의 흐름을 읽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TV 시청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듯합니다. 작년에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무엇을 물었는데 "궁금하면 오백원"이라고 하길래 "천원 줄 테니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같이 있던 사람들이 많이 웃는 겁니다. TV를 못 보니 유행어도 몰랐던 것입니다. 아이들도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 하는 것을 뜻도 모르고 따라하는 걸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TV를 다시 보겠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해줄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 먼저 가족들과의 대화가 살아나게 됩니다. TV를 켜놓으면 거의 대화가 없거나 TV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치곤 했는데 그런 것이 없어집니다. 대신 아이들과 더 많은 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같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제가 신문이나 책을 읽고 있으면 딸아이는 그림책을 가지고 와서 제 곁에서 보기도 합니다. 클래식 FM을 틀어놓고 왈츠가 나오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저녁 식사 후에 집 주위 산책을 나가거나 카페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의 하루 일과에 대해 묻기도 하고 주말에는 도서관을 찾거나 미술관에 가서 뛰어놀기도 하지요. 외식을 할 때면 스마트폰 대신에 책 2권을 들고 가서 식사하는 동안 책을 보는 모습을 보면서 'TV 안 보기'가 저희 가족의 삶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주말에 TV를 보면서 소파에 누워 있는 것보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기에 감수하고 있습니다.

TV를 보지 않아서 좋은 점 한 가지는 아이들이 일찍 잠자리에 든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의 취침 시간은 오후 9시입니다. 처음엔 아이들을 재우다가 같이 자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서는 조용히 TV를 보기도 했습니다만 점점 TV 대신에 책을 보거나 운동을 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변혁기를 경험한 '디지로그'(Digilog) 세대입니다. 가끔씩은 너무나 빨리 변하는 디지털 기술에 따라가기가 벅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나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그것을 즐기면서 사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TV 대신 신문을, 태블릿PC 대신 책을 꺼내 읽으면서 오랜만에 볼펜으로 연습장에 끄적이는 아날로그 시대의 '느림의 미학'을 느끼면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홍용택/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 교수 plastik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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