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10'대구 동구 용계동) 군은 조만간 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다. 귀 수술만 받으면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도 또렷하게 들려 공부도 더 잘될 것이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잘 안 들려. 다시 말해줄래?"라고 되묻는 일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를 덮을 정도로 긴 머리가 아닌 다른 머리모양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런 영호를 지켜보는 외할머니 이점순(63) 씨는 하루하루 속이 탄다. 이 씨는 병원에서 "영호의 귀를 수술하려면 귀 뒤쪽의 머리를 열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이 씨는 "어린 것이 어떻게 그 고통을 견뎌낼지 너무 걱정스럽다"고 했다. 영호는 외할머니의 속 타는 심정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할머니, 나 괜찮아요"라고 의젓하게 말한다.
◆"너무 빨리 나와서 그래"
영호가 가끔 외할머니 이 씨에게 "난 왜 이렇게 자주 수술해야 하죠?"라고 물을 때 이 씨는 농담으로 "네가 너무 빨리 나와서 그런 거야"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호는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났다. 이때부터 영호는 하루하루가 위험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영호는 생후 100일 때 갑자기 심장이 안 좋아져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후 영호는 1년에 한 번씩 대구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귀와 성기에도 변형이 발견됐다. 영호의 왼쪽 귀는 오른쪽 귀보다 작다. 태어난 뒤부터 왼쪽 귀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영호가 긴 머리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혹여 귀 크기 때문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봐 하는 외할머니의 걱정 때문이다. 또 성기가 몸 안쪽으로 휘어 있어 이를 바로잡는 수술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받았다. 자칫 화장실에서 놀림당할까 봐 외할머니가 이곳저곳에서 겨우 비용을 마련해 수술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수술을 많이 받아서인지 이번에 귀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도 영호는 크게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영호가 받아야 할 수술은 외할머니의 마음을 졸이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큰 수술이다. 영호가 점점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본 결과 영호의 귀 상태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다.
"잘 안 들린다고 해도 '어릴 때 귓바퀴 모양이 망가져서 소리 듣는 게 좀 힘든가 보다' 싶었죠. 보청기 정도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라고 다그치시더군요. 청신경이 점점 죽어가고 있으니 지금 빨리 신경을 회복시키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들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 정말 병원 바닥에 쓰러질 뻔했습니다."
◆작지만 속은 꽉 찬 아이
영호는 또래 친구들보다 체구가 작은 편이다. 게다가 몸도 약하다. 감기에 걸리면 금세 급성 폐렴으로 번져 종합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기 마련이다. 조금만 뛰어도 심장에 무리가 가는 탓에 학교 체육 시간에도 자주 빠졌다. 그래서 학년 초에 영호는 또래 친구들에게 많은 시달림을 받았다. 외할머니 이 씨는 학교에서 시달림을 받고 집에 돌아와 우는 영호의 모습을 보고 억장이 무너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는 영호가 집에서 아프다고 울면서 데굴데굴 구르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친구들이 영호의 다리 사이를 장난으로 걷어찬 겁니다. 수술 부위가 퉁퉁 부어 있었어요. 깜짝 놀라 영호를 데리고 바로 병원 응급실로 가서 겨우 치료를 받았죠."
하지만 영호는 모든 불리한 조건을 극복해가고 있다. 잘 안 들리지만 성적도 반에서 상위권이고 받아쓰기도 1,2개 틀릴 뿐이다. 선생님 말이 잘 안 들릴 때가 많지만 엄청난 집중력으로 수업을 따라간다. 영호는 가난한 집안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해도 '나 때문에 병원비가 들어가면 가족이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래서 '잘 안 들려 답답하다'는 투정도 거의 하지 않는다. 몸을 튼튼하게 하려고 줄넘기나 달리기도 틈틈이 하고 있다. 올해 운동회에서는 처음으로 달리기 3등을 하기도 했다.
"학교 담임선생님도 영호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해요. 그래도 자기 마음만큼 안 되니까 영호도 답답하고, 지켜보는 선생님들이나 가족도 안타깝죠."
◆영호의 꿈이 꽃처럼 피어났으면
영호는 지금 외조부모와 어머니, 누나 2명과 함께 33㎡ 남짓한 좁은 집에서 살고 있다. 영호의 아버지는 영호가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기도 전에 곁을 떠났다. 영호 어머니는 여섯 식구의 생계를 위해 매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영호 외할아버지는 한때 일용직 노동으로 생활비를 보탰지만 얼마 전 위암수술을 받아 일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 영호 가족의 한 달 수입은 영호 어머니 아르바이트와 복지관 정기후원금 등을 합쳐 80만원 안팎이다. 이 돈으로는 영호의 귀 수술은커녕 여섯 식구가 한 달 살아나가기에도 빠듯하다.
"영호 귀 수술시키려고 검사받는 데 든 비용만 60만원이었습니다.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마침 영호 큰 누나가 학교에서 받아온 장학금 50만원에 복지관 정기후원금 10만원이 들어온 게 있어서 그걸로 겨우 검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장기라도 팔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영호의 소이증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은 8일 뇌파 검사를 받아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영호를 보살피고 있는 대구종합사회복지관 홍혜영 사회복지사는 "양쪽 귀의 청력에다 귀 모양까지 문제가 되다 보니 검사비와 양쪽 귀의 청신경 수술비용까지 합하면 1천만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호는 누군가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주저 없이 '국가대표 운동선수'라고 말한다. 축구가 됐든 야구가 됐든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돼 건강한 모습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할머니 이 씨는 영호의 꿈을 키워주고 싶어도 어려운 가정 형편과 부서질 듯한 영호의 몸 상태 때문에 눈물만 흘릴 뿐이다.
"한 때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영호가 너무 가여웠습니다. 어떻게든 영호가 자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뒷바라지할 겁니다. 똑똑하고 성격 좋은 아이인데 제대로 이 세상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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