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언제나 해맞이로 가슴이 설렌다. 하나밖에 없는 해(太陽)가 해(年)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리도 없거니와, 지난해에 맞은 해가 올해 1월 1일이라고 새것으로 교체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매년 새해(新年)가 되면 해맞이로 들뜨게 되는 것은 어쨌거나 '새해이기 때문'일 터이다. 올해는 간절곶 출신 'K'가 깃대를 들었다.
한반도에서 해맞이로 가장 인기 있는 간절곶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날씨가 좋았다. 영하의 날씨답게 쨍하니 맑고, 찬 기운이 안개 덮인 새벽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일행은 바닷가에 차를 세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만만치 않은 겨울 추위에도 파도는 한가롭게 몸을 뒤채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가까운 듯 먼 듯 반짝이는데, 출발지부터 따라온 그믐달이 차마 지지 못하고 외롭게 떠 있었다. 잡힐 듯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수줍게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컵라면이나 먹을까. 해 뜨려면 아직 멀었는데…."
새벽 바닷가에서 오들오들 떨며 먹는 라면 맛이 일품이라는 'H'의 제안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스름한 새벽이 얼굴을 드러내면서, 수평선이 서서히 띠를 두르기 시작했다. 여명이었다. 희미하게 물들어오는 수평선 위의 구름이 나무가 되었다가 짐승이 되었다가 하는 사이, 마침내 여명은 무지갯빛을 뿜어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자연의 조화였다.
여명은 곧 그 빛을 안으로 삼키면서 붉게 물들여갔다. 어둠 속에서 어제를 밀어내고 오늘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었다. 숨 막히는 고통의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직전의 화려함을 가라앉힌 수평선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산고를 치르는 어미의 모습이었다. 내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모습이 저러했으리라. 온몸으로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오늘을 낳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찢었으리라.
아침이 되자 태양은 더욱 힘차게 솟아올랐다. 눈이 부셨다. '어제의 해가 오늘의 해'라는 생각은 잘못이었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새롭게 뜬 것이었다. 금빛 햇살을 뿌리면서 떠오르는 저 해는 철썩이는 저 바다와 산이 온 힘을 다해 진통하여 낳은 새로운 해였다.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문득 일출 때 소원을 빌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해변을 거닐어 볼 생각도 미처 못했다. 간절곶의 명물인 우체통도 물론 보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하늘 높이 떠 있는 저 해를 낳기 위해 온 세상이 진통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차 안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소진/아카데미 강사 giok04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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