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란 드라마가 종영됐다. '1990년대 청춘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도에 맞게 당시 대중문화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 크게 주효했다고 보여진다. 1994년 드라마 '서울의 달' 주제곡부터 시작된 노래는 주요 순간마다 배경음악으로 깔려 재미를 배가시켰고, 당시에 유행한 의상 브랜드, 컵라면 상표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것도 눈길을 끌었다.
줄임말로 '응사'로 불리며 대한민국 65만 명의 94학번과 수백만 40대들의 '응사 앓이'에 기여(?)했고 나 역시 그 열병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나의 추억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응사의 에피소드는 '비스킷'이라는 모 치킨프랜차이즈의 제품이다. 당시 동생은 연세대 94학번이었고, 나는 상병 휴가를 나와 있었다. 동생 하숙집이 있던 서울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 근처에서 흰 옷 입은 할아버지가 서 있는 극 중의 바로 그 가게의 '비스킷'을 처음 먹었다. 실제 비스킷은 모닝빵 크기의 빵이지만, 당시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과자로 착각하기도 했었는데,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제품의 속성을 몰라 40개 주문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렇듯 '응사'는 내게 잊고 지냈던 추억의 조각들을 모아준 드라마였다.
1997년 IMF 구제 금융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언급됐다. 극 중 여자주인공이 수백 군데에 이력서를 내고 겨우 합격을 통지받은 회사가 부도났던 에피소드. 나와 내 또래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드라마 말미에 모 배우가 "우리 집은 현관만 우리 것이고 나머지는 다 은행 것이야"라고 하던 대목은 현재 나의 자화상인 동시에 많은 대출을 끼고 내 집 마련한 내 또래들이 공감하고 끄덕이는 현실이기도 했다.
20대 초반 한때 우리는 'X세대'로 불렸었다. 1968년생부터 1974년생에 이르는 2차 베이비붐 세대로 우리 40대의 노후 문제도 서서히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드라마를 통해 힘겨운 현실을 잊고, 인생의 쓴맛을 몰랐던 20년 전의 사랑과 희망들이 그리워, 현재의 40대들은 그렇게 열병처럼 '응사 앓이'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4년 새해가 밝았다. 사람이 고비와 절망 속에도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건 좋은 것은 오래 기억하고 나쁜 것은 빨리 잊어버리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20년 전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더듬었던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앞으로 20년 후 2034년에 떠올려보는 2014년은 어떤 행복한 기억과 추억만이 남을까. 누군가 미래에서 '응답하라 2014'를 외칠 때 이 시절이 아름답고 멋진 시절이기를 기대한다.
신현욱 테너'대구성악가협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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