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유엔평화유지군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 때 벌어진 '스레브니차 학살'은 세르비아의 '인간 사냥'을 피해 스레브니차로 피신해온 무슬림 보호 임무를 맡은 유엔평화유지군(PKO) 소속 네덜란드군이 방조한 것이었다. 당시 유엔은 스레브니차를 '안전지대'로 선포했지만 1995년 7월 11일 라코트 믈라디치가 지휘하는 세르비아계 군은 이를 무시하고 스레브니차를 점령했다.

이때 스레브니차에는 네덜란드 병사로 구성된 400명의 PKO 파견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세르비아계 군이 들이닥치자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았다. 다음날 믈라디치는 '장교의 명예를 걸고' 무슬림 남자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믈라디치의 부하들은 무슬림 남자들과 소년들을 잡아들여 모조리 죽였다. 이렇게 희생된 무슬림은 공식 집계로만 8천 명에 이른다.

네덜란드 병사들은 무슬림을 넘겨준 대가로 안전하게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그 배경에는 자국 병사들이 전부 안전하게 빠져나올 때까지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거점에 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모든 공격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네덜란드 정부의 자국 이기주의가 있었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러한 PKO의 무능은 1994년 르완다 내전 때 이미 드러났었다. 당시 후투족의 투치족 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평화유지군은 후투족 무장 세력에 무기가 불법 반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PKO는 이를 지켜봐야만 했다. 유엔 관리들이 무기 압수가 평화유지군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이유에서 금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유엔평화유지군 무용론'을 제기했다. PKO가 아프리카 남수단 등 분쟁 지역에 파견되어 있지만 권한이 제한되고 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평화 유지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남수단에 파병된 우리나라 한빛부대도 일본 자위대에게 실탄 지원을 받아 '장비 부실' 논란을 빚은 바 있다. PKO가 없었다면 상황은 더 악화됐을 것이란 반론도 있지만 평화 유지란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PKO의 전면적 리모델링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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