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한국 명랑만화의 대부' 길창덕

1970년대 대한민국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동시에 진행됐다. 사람들은 '국민소득 1천 달러 시대의 도래'라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전에 경험하지 못한 피로와 불안감도 함께 느꼈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넉넉지 않던 그 시절, 사람들을 위무한 것 중 하나는 명랑만화였다. 요즘과 달리 1970년대 만화계의 대세는 명랑만화였다. 한국 명랑 만화사를 논할 때 길창덕을 빼놓을 수는 없다.

1928년 오늘,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길창덕은 정식으로 미술수업이나 만화 창작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상상력과 창작력이 뛰어난 소년이었다. 1955년 신문 독자란에 한 컷의 만화를 투고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만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이후 50년 동안 명랑만화 창작에 몰두했다. 그에 의해 태어난 주인공들은 학교, 집, 동네 골목길을 배경으로 만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국민들을 웃겼다. 반쯤 졸린 눈, 머리에 '땜통' 자국이 있는 평범한 소년 '꺼벙이'와 일자눈썹의 열혈주부 '순악질 여사' 등이 대표적인 캐릭터이다. 명랑만화의 시대가 저문 이후에도 이 캐릭터들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한국 명랑만화의 대부'라는 찬사를 받은 길창덕은 2010년 1월 30일 81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김해용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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