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전공과 다른 직업을 가지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주 특기로 삼아온 전공 종목에서 벗어나 활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수 활동을 한 주 종목을 내팽개치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나름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지역 체육인들을 만나본다.
① 김경두(레슬링→컬링)
동계종목 컬링을 우리나라에 안착시킨 주역인 김경두(58'경북과학대학 사회체육학과 교수) 경상북도컬링협회장은 다부진 몸매를 자랑한다. 얼핏 봐도 투기 종목의 운동을 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얼굴을 좀 더 관심 있게 보면 쪼글쪼글해진 양 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한 귀는 레슬링 선수의 전유물이다. 레슬링 선수들은 경기 때마다 상대의 귀를 잡다 보니 본래의 귀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다.
김 회장은 대구 영신고와 부산 동아대에서 레슬링 선수 생활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능인중과 수성중, 대구남중, 달서공고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레슬링 감독으로 활동했다. 선수 때는 나름 잘 나갔다. 전국대회에서 10여 차례 우승했으며, 전국체전에서도 몇 차례 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 회장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방대두 2012년 런던 올림픽 레슬링 감독과 함께 영신고에서 레슬링을 했다(방 감독은 전학해 서울 한영고 졸업)"며 "당시 우리나라 레슬링은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경량급에 집중, 선수들을 국제 대회에 내보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중량급이었던 김 회장은 국내 선발전에서 우승하고도 국제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딸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김 회장은 중학교 감독 시절 레슬링 국가대표를 역임한 김익희, 정진혁, 정순원 등을 배출하는 등 능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경북과학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레슬링에 올인하지 못했다.
김 회장이 삶의 일부분이었던 레슬링에서 벗어나 컬링에 입문한 때는 1990년대 초반이었다. 경북과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자 공부를 하면서 우연히 컬링을 알게 됐다.
"외국 서적을 구해 컬링을 접했는데, 재미가 괜찮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보급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고,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만한 동계 종목이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김 회장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컬링 보급에 나섰고, 인프라 구축에도 관심을 두고 컬링 선진국의 경기장을 답사했다.
그는 1994년 경북컬링협회와 대한컬링연맹 창립의 주역이다. 그는 경북에서 전무이사를 맡아 팀 창단 등 저변 확대를 했고, 회장 대행을 거쳐 지난해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대한연맹에서도 심판이사, 국가대표 감독으로 활동했다.
이런 노력으로 컬링은 1996년 대한체육회의 정식 가맹단체가 됐고, 2014 소치 올림픽에도 출전하는 종목으로 발전했다.
특히 김 회장은 의성에 컬링 전용경기장이자 훈련원인 '경북의성컬링센터'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컬링경기장을 짓기 위해 경상북도와 경북도체육회, 의성군의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2006년 의성컬링센터를 문 열게 했다.
김 회장은"레슬링을 하다 국내에 생소한 컬링을 접한 것은 운명이다"며 "대구'경북에서 발굴'양성한 선수들이 현재 한국 컬링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컬링이 우리나라에서 인기종목으로 사랑받을 것"이라고 했다.
김교성기자 kgs@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