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전원 10년, 실패한 실험] <上>생명공학과 학생들, 꿈은 '의사'

앞에선 학과 공부, 뒤에선 의전원 준비…기초과학 분야 와르르

"올해가 마지막 기회" 지난달 대구 중구의 한 가정집에서 수험생이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인 'MEET' 관련 서적을 잔뜩 쌓아놓고 공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4년. 다양한 학부 전공자들의 의전원 입학을 통해 기초의학 연구 분야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경북대는 2017학년도에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과 치의학전문대학원(이하 치전원)을 폐지하고, 2015학년도부터 의예과와 치의예과 신입생을 모집하기로 했다. 전문대학원은 사라지는 추세지만 남긴 후유증은 크다.

◆의전원에 목매는 학생들

재작년 경북대 생명과학부 생명공학과를 졸업한 J(25) 씨는 입학할 때부터 목표가 '의사'였다. 의전원이 생긴 뒤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입학해 의사가 되는 길이 열렸기 때문.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들을 때도 항상 MEET(의학교육입문검사) 시험을 염두에 뒀다. 통계나 화학이 교양으로 듣기엔 재미가 없었지만 MEET 시험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꼭 챙겨들었다.

다른 학과들이 취업 준비에 '올인'하는 것과 반대로 생명공학부의 학과 분위기는 한 번쯤 의전원 시험을 쳐야 하는 것처럼 흘러갔다.

J씨는 "처음에 생물학에 뜻을 두고 있던 친구들도 학점이 잘 나오면 모두 의전원 준비로 빠졌다. 어차피 전공과목이 MEET 시험 내용과 비슷하니까 졸업 무렵엔 한 번쯤 다 시험을 보더라"고 했다. 그는 전체 학부생의 절반 이상이 의전원이나 치전원, 약학전문대학원(이하 약전원) 등 의학 계열 대학원을 준비한다고 추측했다.

"의전원 준비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수업에 들어가면 잘 몰랐던 친구들도 '이번에 MEET 문제가 어떻더라'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진짜 준비하는 사람이 많구나' 생각했죠."

그는 자신의 대학생활이 "의전원 입시 준비반 같은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다른 학과 친구들은 어학연수, 봉사활동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로 떠나거나 휴학을 하지만 그는 4학년 때 1년 휴학을 하고 부산으로 갔다. 의전원 준비학원을 다니기 위해서였다.

군복무도 '의전원 합격 뒤'로 미뤄 둔 상태였다. 8개월간 학원과 고시원을 오갔던 수험생 생활은 이제 끔찍한 악몽이 됐다. "시험 직전에는 하루에 8시간 정도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또 고시원에 가서 공부했어요. 대학 생활을 생각하면 MEET 시험 공부한 것 외에 딱히 기억나는 게 없어요. 학교생활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졸업할 무렵이 되면 의전원 합격과 불합격으로 희비가 엇갈린다. J씨는 지금껏 4차례 MEET 시험을 쳤지만 결국 합격하지 못해 군대에 지원했다.

그는 "친한 형은 삼수해서 우리 과에 입학한 뒤 3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수시로 경북대 의전원에 들어갔다"며 "그 형은 처음부터 목표가 의사였고 의대에 갈 수능 점수가 안 나와서 생명공학부에 들어왔다고 했다. 시험에 붙으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취업도 못하고, 학과 대학원도 못 가고,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학교가 '의사'약사 만들기' 나서기도

아예 학과 차원에서 전문대학원 진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를 휴학한 김모(22'여) 씨는 약학대학 입학을 목표로 이 학과에 들어왔다. 2005년 생명과학전공이었던 이름을 의생명과학과로 바꾸기도 했다.

김 씨는 "학과에서 의전원이나 약대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준다. 교육 과정도 시험 준비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했지만 주변에 약대 가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학점을 잘 받은 사람들 중에서 의전원으로 가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대학원을 준비하지 않는 재학생들은 이런 현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경북대 생명과학부 생명공학과 10학번 김모 씨는 관련 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은 뒤 연구소에 취업하는 것이 목표다. 김 씨는 "주변에 의전원 공부하려고 휴학하는 친구들도 많고, 이제는 의전원이 폐지되니까 약대 가려고 PEET 시험으로 몰리는 애들도 많다"며 "예전보다 우리 학과 커트라인은 높아졌는데 그 이유가 의전원 진학에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경북대 생명과학부 생명공학전공 석'박사 지원생은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2010학년도 석사 모집 정원 39명이었을 때 1차 모집에서 33명이 지원했었지만, 2014학년도에는 35명을 뽑는데 1차에서만 36명이 몰렸다.

학과 측은 전국 주요 대학이 의전원을 폐지하고, 의예과 체제로 돌아가면서 의전원 모집 정원이 준 것이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대 생명과학부 김사열 교수는 "BK21 플러스 사업에 선정돼 대학원생이 연구하기에 좀 더 나은 환경이 된 것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의전원 폐지에 따른 효과도 분명히 있다. 2차 모집과 후기 모집을 하면 대학원 지원생이 지금보다 더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 MEET: 의학교육입문검사(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의 약자로,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이다. 흔히 줄여서 '미트'라고 부른다.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 및 해당 학년도 학사학위 수여 예정자에 한해 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2004년부터 시행됐다. 생물학과 일반화학, 유기화학, 일반물리학, 통계학 등이 검사 영역에 포함된다. 치의학교육입문검사는(Dent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는 DEET,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harmacy Education Eligibility Test)은 PEET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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