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명성황후 시해 조력자 이두황

1895년 8월 일본 공사 미우라 일당이 명성황후를 시해했을 때 이 살인 집단에 조선인들이 가담한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 이 중 대표적인 하수인이 이두황(1858~1916)이다.

서울의 상인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임오군란 후 무과에 급제해 1894년 동학농민운동 진압 작전에 투입됐다가 그 해 11월 최대 격전지였던 우금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일본과 친일파들의 눈에 들게 된다.

명성황후 시해 계획을 세우던 일본 세력들에게 그는 알맞은 충견이었다. 훈련대 간부 제1대대장 자격으로 제2대대장 우범선, 제3대대장 이진호, 이주회 등과 살육 프로젝트를 짰고, 낭인들을 도와 거사에 성공했다.

가담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그는 일본 공사관의 도움으로 도일(渡日), 호화 생활을 하다가 1907년 귀국했는데 중추원 부찬의 벼슬을 받았고, 이어 전북 관찰사가 됐다. 1916년 사망하자 일본 총독부는 그를 전라북도장으로 예우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당시로선 드물게 화장을 요구했고 묘지(사진) 행방도 묘연했다가 후암미래연구소 차길진 대표 등에 의해 어렵게 발견됐다. 사진조차 전해지지 않을 정도로 사후 관리가 철저했다. 1858년 오늘은 그가 태어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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