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日王 부자 암살모의 박열 열사 묘소 찾았다

본지 서거 40주년 맞아 공개, 평양 묘지 납북후 모습 사진

1968년 대동강변에서 촬영된 박 의사의 흑백 독사진
1968년 대동강변에서 촬영된 박 의사의 흑백 독사진

일본 천황 부자 암살을 기도하는 등 민족적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고 박열(朴烈'1902~1974) 의사의 북한 묘소 사진과 납북 이후 생존 모습이 담긴 유일한 사진이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이 사진은 박열 의사 기념사업회(이사장 박인원)가 박열 의사 서거 40주년(1월 17일)을 맞아 매일신문을 통해 공개한 것으로 평양 신미리에 있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재평통) 특설묘지에 안장된 박 의사의 과거 묘소 사진과 새롭게 단장된 묘소 앞'뒤 모습, 그리고 1968년 대동강변에서 촬영된 박 의사의 흑백 독사진 등이다.

박 의사의 묘소가 있는 재평통 특설묘지에는 6'25때 북으로 간 민족진영 인사들인 국학자 위당 정인보 선생을 비롯해 고려대 총장 현상윤, 동아일보 사장 백관수, 제헌의원 노일환, 미군정 대법원장 이종성 등 23명이 묻혀 있다. 또 박 의사의 대동강변 사진은 박 의사가 6'25때 납북된 뒤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모습이다. 이들 사진은 박 의사의 고향인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 건립된 박열의사기념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박열 의사는 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22년 일본 황태자 결혼식에서 일본 천황 부자의 암살을 기도했다.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당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박열 의사는 22년 2개월이라는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과 더불어 윤봉길, 이봉창 등 독립열사들의 유해봉안추진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6'25전쟁 발발 3일 만에 강제납북됐으며 1974년 평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1989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편 박열 의사는 일본인 가네코 씨와 결혼, 부부가 함께 일본 천황 부자 암살을 시도했으며 가네코 씨는 투옥된 지 3년 만에 옥사, 현재 박열 의사의 생가 뒤편(마성면 오천리 샘골'현재 박열의사기념관)에 유해가 안장돼 있다.

올해는 박열 의사가 서거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로 문경 박열의사기념관에서는 17일 추모제가 열린다.

문경'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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