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만 더 버티면 된다." 새누리당에서는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여론과 야당의 지긋지긋한 공세를 조금만 더 버티면 벗어날 수 있어서다. 지난 5일 새누리당은 돌연 광역시급 기초의회 폐지와 교육감선거 방식 개편안을 들고 나와 정당공천제 폐지 논쟁을 1주일 이상 겉돌게 만들었다.
6월 지방선거의 룰을 다루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활동 시한은 이달 말이다. 1월의 마지막 주는 설날 연휴가 들어 있어 실질적인 활동은 24일이면 끝이다. 꼭 2주, 주말 휴일을 빼면 실제로는 열흘이 남았다. 설 연휴를 쉬고 나면 바로(2월4일)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후보들의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사실상의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마당에 선거룰을 바꾸기 힘들다며 '선거법 개정 불발'을 선언하면 되는 것이다.
합의가 안 되면 결론은 당연히 '기존안대로'다. 지방정치권을 쥐락펴락하기 위해 정당공천권을 죽어도 놓기 싫어하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1년을 버텼는데 열흘을 더 못 버틸 것도 없다. 폐지를 약속했던 대통령도 별 말이 없다. 심지어 정개특위 새누리당 간사라는 사람은 12일 올해 선거의 한시적인 정당공천제 폐지라는 민주당의 제안에 대해 "후보자 난립현상, 부적격자 여과 불능, 후보자의 자질을 알 수 없는 등 부작용만 많을 것"이라며 포퓰리즘, '위선적인 개악'이라고까지 했다. '하기 싫다' 내지 '안 하겠다'는 뜻을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원내 과반수 정당의 자신감 내지 낯두꺼움의 발로였다.
이에 앞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6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2월초다. 그 전에 자치단체 구성을 위한 논의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색안경을 끼고 본 탓인지, 예비후보 등록 때까지만 버티면 모든 문제를 '불발'로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
선거를 5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새누리당이 이런 식의 돌출행동을 한 저의는 분명하다. 대선 공약 불발에 대한 비판 공세를 버틸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다. 새누리당은 결국 정당공천제에 국한돼 있던 전선(戰線)을 다원화시켜서 비판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시간을 버는데 거의 성공한 것 같다. '욕은 순간이지만 정당공천의 과실은 달콤하기만 하다'며 안면에 철판을 깔고 밀어붙인 결과다.
어차피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어떤 변화도 줄 의도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안 되어도 그만이었다. 시간끌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새누리당이 내놓은 몇 가지 지방선거 개혁안(새누리당의 주장)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거론돼왔던 것들이다. 일부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그러나 타이밍이 문제였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때가 있는 법이다. 때가 맞지 않으면 하지 않음만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아예 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비쳤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배가 부를 때면 음식물쓰레기나 다름이 없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의 생각은 절대로 좋게 봐 줄 수가 없다.
1991년 30년 만의 지방선거 부활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었는지를 안다면 그리 쉽게 폐지 의견을 내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 선거의 맨 아래 단위인 기초의원 선거를 하루 아침에 없애겠다고 불쑥 내뱉었다. 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두고서다. 국력 낭비, 예산 낭비를 막는다지만 야당과의 패싸움에 시간을 다 허비해놓고 선거가 임박해서야 이 문제를 불쑥 꺼내든 집권 여당, 새누리당에게는 지방과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 한 달 전에 직선제를 없애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를 꺼낸 것도 마찬가지다. 실현 여부를 떠나 그런 철면피가 없다.
민주당의 지적처럼 새누리당은 정말 풀뿌리 민주주의를 논두렁의 잡초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잡초에도 발이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게 새누리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지방사람들이 언젠가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아닌 결초보원(結草報怨)을 할 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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