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 -①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지식의 횡단이 요구되는 건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경계를 가로질러 넘나드는 지식이란 쉬임없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거기에서는 원로의 권위나 노년의 안식 따위는 필요 없다. 가슴 벅찬 열정과 끈질긴 지구력만이 요구될 뿐. 물론 그 세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이전에 메고 다니던 뗏목을 내려놓아야 한다. 치열하게 접속하되 때가 되면 가차없이 내려놓고 떠나는 것. '횡단'이란 무릇 이런 것이다. (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중에서)

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다시 읽었다. 2005년 초, 2009년 초에 이어 세 번째이다. '기획'의 시대에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책을 읽다니. 하지만 사실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이 책은 최고의 기획서이다. 걸어오던 길의 풍경을 바꾸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읽었다. 2005년 전국적인 통합논술의 열풍 속에서 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이란 모임을 만드는 길을 제공했던 책, 2009년 책쓰기 프로젝트에 빠져들면서 책쓰기지원단을 구성하면서 다시 잡았던 책. 2014년을 맞은 현재, 이 책을 다시 펼친 것은 무엇인가가 가슴 한켠에서 꿈틀거렸다는 증거이다.

신기한 것은 이전에는 이 책을 읽을 때 보이지 않던 어휘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접속, 횡단, 생산'이란 단어에만 집중했던 지난날에는 보이지 않던 '문턱, 탈주, 배치, 축제, 비전'이란 단어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식의 횡단을 통해 경계를 가로질러 넘나드는 지식을 생산하려고 달려왔던 10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한 해가 시작될 즈음, 다가오는 1년을 규정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정하곤 했다. 2014년은 논어에 나오는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를 택했다. 절실하게 질문하고 가까운 데부터 살피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초심에서 다시 정책을 시작하고 싶었다. 내가 왜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는지, 내가 왜 국어라는 과목을 택했는지, 왜 기획의 방법을 노마디즘에서 찾았는지, 왜 실천 에너지를 현장 선생님에게서 찾고자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보고 싶었다.

그게 쉽지는 않았다. 학교에서도 그랬지만 교육청이라는 큰 조직 안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엄청난 용기가 요구되기도 했다. 어쩌면 그러한 욕망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경직된 코드가 무의식 중에 내 속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아프지만 그 부분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돌아보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그런 기획들과 함께 내 삶의 길을 걸어온 것이 태반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나도 모르는 상황들의 변화에 의해 기획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실 접속과 횡단, 그리고 생산은 내 삶의 방법론이었기에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대상과 접속하면서도 그 대상에 전적으로 몰입한 적은 별로 없었다. 대상에 나름대로의 거리를 두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 방향을 고민했다.

대상에 대한 미안함은 언제나 남았다. 사실 대상이 없었다면 시작도 없었고, 거리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진정 의미를 지닌 존재라면 그런 거리를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었다. 대상이 원했던 것도 아류보다는 '생산'을 원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환경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생산은 언제나 불가피하다. 우리의 '생산'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서 이루어졌기에 사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기획한' 셈이다. 출구를 마련할 필요도 없었다. 기획은 실천과 함께 걸어갔으니까 말이다.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면 그만큼 힘이 된다. 어쩌면 내 이야기는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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