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億'하는 악기값…플루트 8천만원, 바이올린 42억짜리도

"플루트, 금 입히면 묵직한 소리" …수험생용 1천만원 이상

지난해 말 대구 현대백화점에서 열렸던 초고가 이탈리아 악기 전시회에 출품된 명품 악기들. 200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첼로와 바이올린 등 세계 최고의 명품악기 20점이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말 대구 현대백화점에서 열렸던 초고가 이탈리아 악기 전시회에 출품된 명품 악기들. 200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첼로와 바이올린 등 세계 최고의 명품악기 20점이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올드 이태리 명기 컬렉션'이라는 이름의 이 전시회에서 특별초대된 예술영재들이 명기를 시연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입시의 압박감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시절, 우스갯소리처럼 떠돌던 이야기가 "집이 부유해 하프 하나 살 수 있으면 대학 문턱을 쉽게 넘는다"는 것이었다. 실력은 차치하더라도 워낙 고가의 악기이기 때문에 가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비단 하프뿐만이 아니다. 전문 연주자들이 사용하는 악기의 가격은 어지간한 고급차 한 대 값을 훌쩍 뛰어넘는다. 연주자들도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미묘하지만 조금 더 나은 소리를 찾기 위해 악기에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감당하기에 워낙 만만찮은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악기의 세계를 한번 들여다보자.

◆명기 즐비한 바이올린의 세계

많은 과학자가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 소리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화산재 폭발설에서부터 최근에는 스위스 한 연구팀이 특정 곰팡이균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었다. 2008년 경매에서 낙찰된 과르네리 바이올린은 390만달러로 현재 우리 돈으로 420억원에 육박한다.

정교한 바이올린 소리를 완성하는 데는 몸체에 쓰이는 나무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선호되는 몸체용 나무는 밀도가 낮고, 소리의 전달이 빠르며, 탄성이 뛰어나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아마추어 입문용은 100만원 미만, 대학 입시생들은 1천만원 이상을 사용하며, 전문 연주자들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악기를 사용하는 수준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박은지 대구국제오페라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지역에서도 과르네리 델제수 등 명기로 꼽히는 악기를 사용하는 몇몇의 연주자들이 있고, 꼭 명기가 아니라도 프랑스 비욤, 그란치노 등 유명 브랜드가 있는데 보증서가 있는 좋은 악기는 2억원가량의 고가"라고 설명했다. 악기뿐 아니라 활도 상당한 고가다. 보통 전문연주자들은 200만~500만원, 혹은 1천만원이 넘는 활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악기가 얼마나 고가인지를 드러내기 꺼린다. "집에 금덩이 몇 개를 두고 사는지 알려주는 바보가 있겠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덧붙였다. 고가의 악기이다 보니 늘 분실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진 씨가 20억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도난당했다가 3년 만인 2013년 7월에 되찾기도 했다.

◆금빛 찬란한 플루트

흔히 플루트 하면 은빛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전문 연주자들이 사용하는 플루트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골드인 경우가 꽤 있다. 전체가 14K, 18K로 만들어진 말 그대로 '금덩이'인 것이다.

플루티스트 하지현 씨는 "금의 함량이 많이 포함될수록 소리를 내는 데 호흡량이 많이 소요되는데다, 무게도 조금 무거워지기 때문에 어깨와 팔 등에 무리가 오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실버가 가볍고 부드러우며 예쁜 소리를 내는 반면 골드는 좀 더 묵직하고 힘이 있으며 멀리 뻗어나가는 더 건강한 사운드를 내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가격대는 14K가 6천만~7천만원 선, 18k는 8천만원 내외를 형성한다. 하지만 워낙 고가이다 보니 전문 연주자가 아닌 전공 대학생들은 골드와 실버가 섞인 '콤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4천만~6천만원가량이다. 아마추어는 몇십만원대, 입시준비생들은 1천만원 정도의 악기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비싸다고 해서 다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 씨는 "골드로 만들어진 플루트를 부는 데는 풍부한 호흡량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체구와 호흡량, 그리고 선호하는 음의 색깔에 따라 적절한 악기 선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이즈에 비해 저렴한 가격의 금관악기

오케스트라에서 박력 있고 웅장한 사운드를 표현해주는 금관악기. 배에 힘을 주고 힘있게 불면 쉽게 소리가 날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코리아윈드필하모니 한만욱 대표(트럼피터)는 "음역을 만드는 자체가 어렵다 보니 입술로 압력을 만들어서 한 음 한 음 올리고 내리는 연습을 해야 하고, 입술과 혀를 떠는 텅잉 주법을 꾸준히 익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펫은 놋쇠를 녹여 만든다. 초보용은 100만~150만원, 프로는 370만~500만원 초반대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여느 악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재즈 트럼피터들이 많이 사용하는 미국 '데이비드 모넷' 브랜드는 주문식 수제작으로 만들어져 800만~2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이런 가격 차이는 쇠의 재질과 피스톤의 부드러움, 금도금 여부에 있다. 한 대표는 "악기를 금으로 도금하게 되면 80만~150만원 정도 가격이 비싸지는데, 음색이 크고 깊어져 앙상블이 더욱 잘 이뤄지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호른은 1천400만~2천만원 선, 트롬본은 800만~1천500만원 선, 튜바 역시 1천400만~2천만원 선으로 사이즈가 큰 데 비해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다.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 파이프오르간

대구시민회관 리모델링 공사 당시 파이프오르간 설치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기왕에 콘서트 전용 홀을 건립하는 것이라면 파이프오르간이 있어야 한다는 음악계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20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결국은 설치하지 못한 것.

파이프오르간은 여느 악기와 달리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사이즈와 모양, 재질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파이프 오르간을 만드는 장인을 '빌더'라고 부른다. 오르가니스트이자 공간울림 대표인 이상경 씨는 "옷으로 치자면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인 셈"이라며 "규모에 따라 제작 기간이 2년에서 5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수제작으로 만들어지고 한번 설치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파이프 오르간은 가정용 가장 작은 사이즈가 2억원가량, 인터불고 컨벤션홀에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20억원가량이다. 하지만 유럽의 유수 성당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은 그 규모와 오랜 역사 때문에 가격을 따지기도 힘들 정도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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