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에선 된다? 뮤지컬 '기회의 땅'

연말 연초 대작 3편 모두 '흥행 대박'…잘 갖춰진 공연 인프라도 큰 몫

사운드 오브 뮤직
사운드 오브 뮤직
명성황후
명성황후
노트르담 드 파리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시장이 전반적으로 불황이라고 아우성치지만 대구만은 예외다. 지난해 연말 대구에서 공연된 대형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명성황후'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 빅 히트를 치며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4, 5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왜 대구에서만 뮤지컬이 흥행하는가'에 대해 뮤지컬 업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형 뮤지컬, 얼마나 대박 났길래?

공연기획자들이나 뮤지컬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뮤지컬 '명성황후' 대구 장기공연은 일종의 '불가사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방도시에서 대형 창작 뮤지컬을 장기공연한다는 것은 업계에서는 '망하자고 작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6일부터 29일까지 총 30회에 걸친 공연에 무려 4만 명이 관람했다. 1일 평균 1천300명이 명성황후를 보러 왔다는 말이다. 공연이 있던 계명아트센터의 좌석 수가 1천900석이므로 평균 좌석점유율 70%를 기록한 셈이다.

지난해 말 오페라하우스(1천400석)에서 공연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경우는 공연을 보려는 예매자들이 넘쳐 공연기간 도중에 1회를 연장하기도 했다. 총 12회 공연에 1만4천500명이 관람해 1회 평균 1천200명 이상 객석을 채운 셈이다. 게다가 관객 대부분이 유료관객들이었다. 예술기획 성우 배성혁 대표는 "대구 공연 이후 부산에서 2주간 공연했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었음에도 대구지역의 60%밖에 표가 팔리지 않았다"며 "'차라리 대구 공연을 더 늘릴걸'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항상 1, 2층 객석은 매진을 기록했으며 관람객 1만 명 중 유료관객이 90%를 기록해 큰 수익을 벌어들였다. 특히 '노트르담 드 파리'는 커튼콜 때 전 객석의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 배우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뮤지컬 업계에 따르면 대형뮤지컬이 기획되던 초창기에는 공연장의 50%만 채워도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타마케팅으로 인한 뮤지컬 배우들의 출연료가 점점 올라가고 무대 장치 또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면서 제작단가는 점점 상승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좌석점유율이 70%는 넘어야 겨우 본전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대구는 평균 좌석점유율이 70% 이상인데다 매진을 기록한 횟수도 높았다.

◆'알짜 티켓'을 사는 중'장년층이 흥행대박 주도

이처럼 대형뮤지컬이 대구에만 오면 대박을 친 가장 큰 이유로 지금 대구지역의 중'장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 콘텐츠가 뮤지컬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대구의 중'장년층이 각종 계모임이나 부부동반 모임을 열 때 '뮤지컬 관람'을 모임 프로그램으로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평일 대형 뮤지컬이 공연되는 계명아트센터나 오페라하우스 등 대형공연장에 가면 40, 50대 관객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중'장년층에게 뮤지컬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지만 지금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가장 밑바닥에는 2004년 '맘마미아' 장기공연의 성공이 있었다. 당시 '맘마미아'는 대구지역 관객뿐만 아니라 구미, 울산 등 타지역 관객까지 끌어들이며 두 달 동안 6만4천명이 관람하는 등 대박을 터트렸다. 이때 뮤지컬의 재미를 본 대구시민들은 자연스레 뮤지컬을 찾았고, 이것이 지금의 중'장년층 뮤지컬 붐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10만원을 넘어가는 비싼 티켓 가격에도 이를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연령층이 중'장년층이라는 점도 '중'장년층이 흥행을 주도했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박정숙 기획실장은 "콘서트와 클래식 공연과 달리 뮤지컬은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문화 상품"이라며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중'장년층이 쉽게 뮤지컬에 접근하게 된 것이 대구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의 흥행 대박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문화 마케팅 또는 사원 복지 차원에서 뮤지컬을 이용하는 예도 늘고 있다. 대구백화점이 연말을 맞아 임직원과 협력사원 등 1천여 명이 '사운드 오브 뮤직'을 관람한 사례는 가장 대표적인 뮤지컬 이용 사례로 꼽히고 있다. 공연기획사에서도 기업체나 대학, 지자체 등과 협약을 맺어 '~날'을 통해 할인 마케팅을 벌인 것도 뮤지컬 붐에 한몫했다.

◆줄어든 경쟁, 잘 갖춰진 공연장도 한몫

대형 뮤지컬이 대구에서 인기를 끈 요인 중 하나로 '공연 때 다른 적수가 없었던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성황후'가 장기공연을 하기는 했지만 이번 연말에는 대부분 공연 날짜가 겹치는 경우가 없어서 안정적으로 관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명성황후'는 지난해 12월 6일부터 29일까지 공연했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은 지난해 12월 6일~15일, '노트르담 드 파리'는 올해 1월 2일~5일 등 세 공연이 모두 열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을 기획한 파워포엠 최원준 대표는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거기에 '명성황후' 공연이 끝난 뒤 경쟁이 될 만한 대형 뮤지컬이 같은 기간에 열린 게 없어 관객확보가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뮤지컬 시장의 불황이 지방공연을 주저하는 현실과 묘하게 겹친다. DIMF 박정숙 기획실장은 "지금 뮤지컬 시장이 전반적으로 불황이다 보니 서울의 뮤지컬이 지방 투어를 기획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내려오는 작품의 수가 적다 보니 경쟁상대가 자연히 줄어들고 그래서 한 공연이 안정적으로 대박을 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잘 갖춰진 공연장도 한몫했다. 대구에는 1천 석이 넘는 대형 공연장이 계명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수성아트피아 등 10곳이 넘는다. 대형 뮤지컬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울의 대형 뮤지컬 기획사들이 지방투어 장소로 선호하는 곳 중 하나가 대구이기도 하다. 한 뮤지컬 공연기획자 대표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보니 '레미제라블'과 같이 서울보다 대구에서 먼저 상연되는 작품도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대형 뮤지컬 흥행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높다. 특히 오는 2월 27일에 열리는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팀 내한공연과 3월 말 런던 웨스트엔드 오리지널팀의 '맘마미아' 내한공연의 결과에 지역 뮤지컬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 공연을 기획하고 있는 공연기획사 측은 흥행을 낙관하고 있다. '맘마미아'의 경우 14일 티켓 예매가 시작됐는데 이틀 동안 2천 매가 예매됐으며 이 정도 속도라면 매진도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뮤지컬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지금의 대구 뮤지컬 흥행 호조는 '연말'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한 게 크다"며 "아직은 마니아층이 두텁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적인 흥행을 낙관하는 것은 이르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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