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권, 빵 한 덩이, 포도주 한 병,
나무 그늘 아래서 벗 삼으리
그대 또한 내 곁에서 노래를 하니
오, 황야도 천국이나 다름없어라
피츠제럴드(1809~1883)는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4행시)들을 번역해 영문판 '루바이야트'라는 불후의 명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오마르 카이얌은 11세기 페르시아의 시인이다. 그의 시는 허무주의와 숙명론적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대체로 삶에 대한 깊은 체념이거나 아니면 매우 현세주의적인 철학이 담겨 있다.
카이얌은 인생을 주로 여인숙이나 천막, 장기판 위에서 죽어가는 말, 굴러다니는 공에 비유했다. 한마디로 인생이란 사막을 건너는 나그네가 잠시 쉬어가는 곳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이유에서 카이얌의 시는 한 번뿐인 인생을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즐기자는 내용으로 일관한다.
'젊어서 노세' '현재를 즐겨라' 식의 노래와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되는 대로 살아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인생이란 어차피 고달프고 힘든 것이니 좀 더 낙천적으로 생각하며 느긋하게 살아가자는 말이다.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고 추스르다 보면 그것을 다시 가벼이 짊어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기는 법이다.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매년 1월 1일 정오 비엔나 음악협회 대강당에서 신년 음악회를 개최한다. 이 음악회는 해마다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연말부터 비엔나 신년음악회를 이끌어갈 지휘자가 누구인지 화제가 되기도 한다. 2014년은 유태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
무대를 온갖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신년음악회의 주요 레퍼토리는 왈츠이다. 왈츠는 3박자의 경쾌한 춤곡으로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농민들의 무곡에서 시작되었다. 새해를 왈츠로 시작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의 무거웠던 것들을 모두 날려버리듯이 신년음악회는 한 해를 새로운 희망과 즐거움으로 시작하자는 의미이다.
1866년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7주 만에 패하여 전 국민이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엔나 남성합창단은 국민을 위로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곡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의뢰하였고, 이때 탄생한 곡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이다. 도나우 강은 비엔나 시내를 가로지르는 젖줄로 오스트리아인들은 슈트라우스의 도나우 강을 통해 패전의 슬픔을 위로받고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이것이야말로 비엔나 왈츠의 진정한 의미라 할 수 있다.
'술과 여인과 노래' 또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적인 왈츠 중의 하나이다.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왈츠들은 멋지고 쾌활하며 낭만적이다. 하지만 일정 부분의 통속성도 갖추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술성과 통속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 슈트라우스의 왈츠이다.
술과 여인은 남자가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가장 1차적인 요소들로 남성 중심의 시대가 낳은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이나 여자는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손쉬운 방편들이었다. 또 이것은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최근 뉴스를 통해 보았듯이 자칫 심각한 도덕적 타격을 받거나, 지나치면 그동안 힘들게 쌓아온 업적들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술과 여자, 이보다 더 강력한 유혹이 어디 있을까. 아무튼 인생이 단 한 번의 기회뿐이라면 다소 천박하고 품위가 떨어지더라도 온갖 욕망과 유혹을 다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 사람, 특히 남자들의 마음이 아닌가.
카이얌의 루바이야트를 읽으며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잠시 들었다. 하지만 기로에 설 때마다 끊임없이 번민과 회의를 거듭하고, 그것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때로는 음악과 노래를 통해 위로받는 삶이야말로 진정 의미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서영처 영남대학교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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