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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대구경북은 삼국유사 보고(寶庫)

지거 스님
지거 스님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한국 고대 역사서의 쌍벽으로,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의 역사, 종교, 문학, 민속, 신화, 전설, 지리, 언어, 미술 등을 총망라하여 원천적 연구 자료를 제공하는 한국 고대사의 보고(寶庫)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一然'1206~1289)은 경산에서 태어나 1227년 승과(僧科)에 장원 급제하여 비슬산 대견사(당시 보당암)에 초임 주지로 부임하였다. 이후 무주암에서 도를 깨치고 개경을 거쳐 포항 오어사와 달성 인홍사(仁弘社) 등에서 수행 정진하였으며, 1274년(원종 15) 포산(비슬산의 옛 이름) 동쪽 기슭의 용천사(湧泉寺)를 중창하고 이 절에 주석하면서 불일결사문(佛日結社文)을 저술하였다. 또한 이때쯤에 삼국유사를 탈고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일연이 용천사 주지를 마지막으로 비슬산을 떠나 72세 노구의 몸으로 청도 운문사 주지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수제자 무극(無極)에게 탈고된 삼국유사의 원고를 주며 편찬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자료 수집 및 저술은 젊은 수행 시절 필생의 작업이었고, 이 대작을 교정 정리 정서 편찬하여 책으로 묶은 이는 무극이었던 것이다. 일연 대선사는 1283년(충렬왕 9) 국사에 책봉되고, 운문사를 떠나 군위 인각사에서 5년을 머물다 입적하였다.

이렇듯 일연의 생애를 살펴보면 대구경북은 삼국유사의 산실이며 보물 창고임을 알 수 있다. 경산은 일연의 탄생지이고, 대견사, 무주암, 인홍사, 용천사 등에서 35년간 주석했던 비슬산은 삼국유사의 집필처이며, 오어사는 나랏일을 끝낸 뒤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또한 운문사에서는 삼국유사가 완성되었고, 인각사는 일연의 열반지다. 이는 경산, 달성, 포항, 청도, 군위 등 대구경북 전 지역이 일연의 삼국유사 성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의 가장 위대한 등불인 삼국유사라는 보물을 묻어둔 채 대구경북은 보물찾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삼국유사와 일연을 두고 각 지자체별로 개별적 사업과 홍보에만 치우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역별로 기득권을 주창하는 신경전을 펼 때가 아니라, 대구경북 전체가 하나가 되어 삼국유사라는 금광을 공동 발굴하여야 한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창조가 아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창조개발이다. 부디 대구경북이 합심하여 상호 이익되는 삼국유사 프로젝트가 선보이게 되기를 바라본다. 그러면 그 시너지 효과로 인하여 국민들의 역사 인식, 관광 홍보 등에 지대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걸맞은 일연의 시 한 수를 전하노니, '홀아비는 아미(蛾眉: 미인)를 꿈꾸고 도둑은 창고 꿈을 꾸네. 어찌 하룻밤만의 꿈으로 청량(淸凉)에 이르리.'

지거 스님/동화사 부주지. 청도 용천사 주지 yong1004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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