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안녕들 하신지요?

신문사의 배려로 의창란(欄)에 글을 쓴지 7년째 접어든다. 다른 곳에도 글을 쓰고 있지만 내용은 대부분 내 환자들 이야기다. 어려워하는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해서 끼적거리다 보니 벌써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새해가 되니 그분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주름 잡힌 얼굴들이 보고 싶어진다. 세상을 하직하신 분들은 눈가에 물기를 적셔주면서 얼굴만 희미하게 눈앞에 왔다갔다하고.

처음 기억되는 환자는 회진할 때면 "선생님, 안 나아서 미안해요"라고 인사를 하던 분이다. 종양을 수술하고 몇 년 후 재발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약으로만 치료하자 얼굴이 망가지고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됐다. 그래도 회진하러 병실에 들어서면 낌새를 알아채고 "선생님이세요? 미안해요. 그렇게 낫게 해 주시려고 노력하는데 낫지 않아서"라며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서 내 모습을 보려고 애쓰던 분이다. 어찌 환자가 미안하겠는가? 의사가 미안하지. 그분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회진할 때 "불편한 점은 없으시냐?"고 물으면 대답없이 손만 내밀고, 손을 꼭 잡아드리면 그제야 얼굴에 안도의 빛을 띠며 눈을 스르르 감으시던 할아버지, 뇌출혈 후 약 7년 정도를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면서 노모(老母)에게 끊임없이 삶의 희망을 안겨주시던 병실 꽃밭의 주인공, 그분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선상님, 오래 사셔야 돼. 선상님이 안 계시면 누가 내 병든 몸을 돌봐주지?" 외래 진료실에 오실 때마다 노래하듯 부탁하시던 할머니는 지금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다. 친척분이 몇 달에 한 번씩 약을 타가고 나는 그분을 통해 할머니의 상태를 간간이 전해들을 뿐이다. '자기를 돌봐 달라'고 그렇게 노래 부르듯 "오래 사슈"라고 부탁하던 할머니의 요청도 지금 나는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28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시장에서 순대 장사하면서 남매를 키웠다던 할머니, 이제는 정말 그 삶이 후회된다고 "청춘을 돌려 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하면서 주름살 사이의 얼굴색이 붉어지던 분, 요즈음 웬일인지 얼굴을 보이시지 않는다.

지리산자락에 살면서 부부가 같이 오다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는 할머니, 파킨슨씨병을 앓는 남편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내고 나보고 아플 때 도와달라고, 조그만 섶이라도 돼달라고 부탁하시던 분, "앞의 환자 진료가 왜 그리 오래 걸리느냐?"고 밖에서 고함치고는 막상 자기 차례 때는 신세타령부터 며느리, 남편 욕까지 하느라고 간호사가 재촉해도 진료실을 나가지 않던, 간호사들에게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던 할머니…. 요즈음 그분들이 외래 진료실에 보이지 않는다. 문득 그분들의 안위(安危)가 궁금해진다. 안녕들 하신지요?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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