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주례

눈은 캄캄해지고 목은 타들어 가고 침을 연속 삼키면 왜 그리 시간이 더딘지…. 처음 제자의 끈질긴 간청에 굴복해 처음 주례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신랑 신부도 긴장하고 나도 두서없고, 주례사 중에 "신랑 신부도 결혼이 처음이고 저도 주례가 처음입니다"라고 얘기하였더니 하객 사이 폭소가 터져 멋쩍었던 일이 생각난다. 갓 불혹을 넘겼을 때 어느 날 결혼을 한다며 인사하러 첫해 졸업생이 찾아왔다. 축하한다고 하자 주례를 해달라고 한다. 순간 머리가 쌩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난 아직 주례할 나이도 아니고 인격수양도 미진하다며 거절할 수밖에…. 그래도 완곡하게 부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자신 없이 승낙을 했고, 한 번 하고 두 번, 세 번 이제는 전문 주례 선생이 되고 말았다.

우리의 전통혼례는 집례자라 하여 마을의 덕망 있는 어르신이 맡아서 혼례 절차에 따라 절을 시키고 술잔을 교환하는 등 예식의 순조로운 운영을 주관한 것이 시초가 아닌가 싶다. 주례라는 명칭은 1900년대 이후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도입되면서 신식 결혼이라는 것이 생겨나 절대자에게 연결하는 중간 전달자로서 역할을 한 것이 근대 주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혼례는 많은 사람이 운집한 가운데 거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일제강점기 때 사람이 모이는 것에 매우 민감한 일본 관리들이 자기들이 정해놓은 장소에서 결혼식을 행하도록 하였고, 순사가 파견되어 진행을 주도했다는 슬픈 주례 역사도 담고 있다.

주례인은 올바른 언행과 타의 귀감이 되는 인사가 주로 맡게 되는데 보통 신랑의 인생 선배인 은사, 종교인, 직장상사, 사회 유명 인사 등이 많이 하고 있다. 이런 관례가 한동안은 지속되지 않을까 싶지만 근래에는 주례가 결혼식에서 점점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결혼식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하는 신세대 커플이 늘고 있어 기존의 주례도 변화의 바람을 피할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주례의 역할이 하객들과의 소통에 소홀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보통의 주례는 재미가 없다. 결혼식 당일 최고의 신랑 신부가 되고 싶어하는 커플에게 누구나 같은 주례사를 듣고 있다면 뭔가 맥 빠진 분위기가 될 수밖에. 그래서 최근에는 튀는 주례가 인기 있다고들 한다. 아예 주례 없이 신랑 신부가 주례사 대신 사랑의 독백을 하는 결혼식을 본 적도 있다.

이처럼 주례의 역할은 시대의 흐름과 문화 인식에 따라 점점 다양화되고 변화될 수밖에 없다. 주례자가 누구든 어떤 모습으로 단상에 등장하든 그 이벤트를 잘 융화시키고 축복의 미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자가 오늘의 주례 적임자가 아닌가 싶다.

안봉전 대구한의대학교 화장품약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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