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에 인권보다는 국권,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보다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이 우선시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적지 않은 희생과 아픔이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를 통해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고,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박정희 독재'가 가능했던 것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동의했기 때문이며 동의를 얻어내는 데 도덕성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잘살기 위해 부정부패 안 하고 열심히 할 테니, 국민도 잘 따라오라'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통했다는 얘기다.
◆해진 허리띠'청와대 파리채
1979년 10월 27일 새벽 국군통합병원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한 군의관은 대통령인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짜깁기투성이인 바지와 낡고 해진 허리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핀, 평범한 세이코 시계 등 대통령 옷차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탈했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의 전속 이발사의 증언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박 대통령, 그 양반만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러닝셔츠를 입었는데 낡아 목 부분이 해져 있고 좀이 슨 것처럼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있었어요. 허리띠는 또 몇십 년을 메웠던지 두 겹 가죽이 떨어져 따로 놀고 있고 구멍은 늘어나 연필 자루가 드나들 정도였다니까요. 자기 욕심은 그렇게 없는 양반이…." 박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 날, 청와대 본관 2층 박 대통령의 주거공간을 수색하던 보안사 수사팀은 박 대통령의 욕실 변기 물통에서 벽돌 한 장을 발견했다. 수돗물을 아끼기 위해 대통령이 넣어둔 것이었다.
박 대통령 사후 미국의 CIA 보고서는 박 대통령의 면모를 이렇게 적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박정희는 독단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반면 카리스마와 서민적 이미지를 함께 갖춘 인물로서 직관력, 통찰력을 겸비했다. 반면 그의 사생활은 너무도 청렴하기 그지없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의 회고록 '아, 박정희'엔 대통령 집무실의 파리채 이야기가 등장한다. "박 대통령이 살던 본관 2층과 집무하던 1층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전기를 아끼려는 뜻이었다. 선풍기는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열기가 닥치면 박 대통령은 창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파리가 날아들어 오곤 했는데 박 대통령은 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두르곤 하였다. 박 대통령은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을 때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지금처럼 건강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쌀을 아끼려고 혼식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은 멸치나 고기 국물에 만 기계 국수였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나, 의전수석, 비서실장 보좌관 등 본관 식구들은 똑같이 국수를 먹었다. 장관들도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는 날이면 점심은 국수였다."
◆"다른 후진국 지도자들과 달리 부패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한 음식 중 하나가 비름나물 비빔밥이었다. 보통학교 2, 3학년 시절 20리 시골길을 왕복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비름나물 비빔밥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술회했다. 청와대에서도 육영수 여사에게 부탁해 비름나물을 사다가 비빔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1970년대 후반엔 시장에서 비름나물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청와대 직원들이 씨앗을 구해와 본관 뒷동산에 심어 채취한 비름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 비름나물 비빔밥을 먹는 것 같았다는 게 청와대 직원들의 풀이다.
박 대통령과 함께 한국 현대사를 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생전에 박 대통령의 청렴결백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분이 땅이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장기집권할수록 부패하기 쉬운데 우리는 그 정반대의 경우를 그분에게서 보았습니다. 아울러 통치자가 청렴결백할수록 나라는 더욱 부강해진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외국인들 역시 박 대통령의 청렴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에즈라 보겔(미국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다. 그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고 했다. 브루스 커밍스(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그는 다른 후진국 지도자들과 달리 부패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소박하고 청렴한 박 대통령의 심성은 어릴 때부터 엿보였다. 1936년에 발간된 '대구사범 교우회지' 제4호에 실린 5학년생 박정희의 '대자연'이란 제목의 시. '1.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꽃보다도 황야의 한구석에 수줍게 피어 있는 이름 없는 한 송이 들꽃이 보다 기품 있고 아름답다. 2. 아름답게 장식한 귀부인보다도 명예의 노예가 된 영웅보다도 태양을 등에 지고 대지(大地)를 일구는 농부가 보다 고귀하고 아름답다. 3. 하루를 지내더라도 저 태양처럼 하룻밤을 살더라도 저 파도처럼 느긋하게, 한가하게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고 싶다. 이상'.
박 대통령의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무엇을 지향했는가가 잘 나와 있다.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 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 본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서민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인정 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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