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가와 작업실] 변미영

빨간 날 빼고 거의 매일 출근 쉼터이자 나만의 '무릉도원'

햇살이 가득 들이치는 변 작가의 작업실은 머무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햇살이 가득 들이치는 변 작가의 작업실은 머무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수십 자루의 조각칼과 수많은 물감통이 변 작가의 치열한 작업스타일을 대변한다.
수십 자루의 조각칼과 수많은 물감통이 변 작가의 치열한 작업스타일을 대변한다.
최근 작업실을 경산에서 수성구로 옮긴 변미영 작가. 변 작가에게 작업실은 에너지를 분출하는 공간이자 세속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다.
최근 작업실을 경산에서 수성구로 옮긴 변미영 작가. 변 작가에게 작업실은 에너지를 분출하는 공간이자 세속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다.

변미영 작가의 작업실은 머물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 가득 들이치는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마치 따뜻한 양지 녘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몸이 노곤노곤 풀어지면서 긴장도 함께 무장해제되어 나른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전망도 좋다. 언덕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시야가 트여 있다. 발아래 펼쳐지는 동네 풍경은 정겹다. 빨강, 파랑 등 형형색색의 기와를 이고 있는 단층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고향 마을을 연상시킨다.

변 작가에게 작업실은 주체하기 힘든 끼와 에너지를 분출하는 공간이자 세속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다. 예술가의 삶과 자연인으로 살고 싶은 욕구를 모두 만족시켜 주는 까닭에 그녀는 작업실을 '무릉도원'이라 부른다.

변 작가는 1년 365일 가운데 300일 넘게 작업실에서 보낸다. 속된 표현으로 샐러리맨처럼 빨간 날 빼고 매일 작업실로 출근한다. 이를 두고 그녀는 직업이 화가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남들만큼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출퇴근하는 심정으로 작업실을 찾는다고 했다.

그녀가 작업실을 옮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변 작가는 오랜 기간 도심과 떨어진 곳으로 화실을 옮겨 다녔다. 최근 10년 동안에는 경산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다. 번잡하지 않은 곳에서 자연을 접하며 작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산 작업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장점보다 단점이 더 부각됐다. 불현듯 영감이 떠올라 작업을 하려면 먼 길을 달려가야 했다. 자연조건이 좋아 경산으로 들어갔지만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작업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까닭에 주변 경관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경산 작업실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다닐 수 있는 작업실을 물색하다 지난해 11월 지금의 공간(수성구청 맞은편 주택가)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지금의 작업실은 변 작가의 희망 사항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 집 가까이 있어 언제든 작업실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또 대구에서 가장 번잡한 수성구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흔한 자동차 소음조차 쉽게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하다. 한마디로 도심 속 전원지대다. 최근 시작된 삶을 두고 그녀는 시은(市隱'도심 속 은자의 삶)에 비유한다. 변 작가는 "세상 속에 살면서 속세의 일로부터 단절된 생활을 꿈꾸는 것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지금 이 모순적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이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변 작가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자신의 에너지를 담아 내기에 동양화가 가진 재료의 단조로움이 컸다고 했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부터 입체적인 작업으로 전환했다. 변 작가의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합판 위에 여러 가지 물감을 덧칠한 뒤 조각칼로 긁어내며 드로잉을 한다. 이후 화면 위에 다시 갖가지 물감을 칠하고 닦아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물감을 덧칠하기 때문에 작품 속 색감이 단순하지 않다. 붉은색이라도 그 속에 푸른색, 노란색 등을 품고 있다. 변 작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미묘한 느낌이 들고 그 깊이감에 매료되는 이유다.

화가라는 본분에 충실한 변 작가의 스타일은 작업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는 기본을 매우 중시한다. 변 작가는 덧칠 작업을 기초 공사에 비유한다. 기초 공사가 잘 되어야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듯이 덧칠을 잘해야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변 작가의 지론이다. 그래서 변 작가는 만족할 만한 색감을 얻기 위해 덧칠만 수십 차례 반복한다.

또 그녀는 작업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 여느 예술가와 달리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듣는다. 감정이 요동치면 작품 활동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칼날 같은 이성으로 감정을 재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품 활동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꼬박 1년을 바친 경우가 있을 만큼 변 작가는 물리적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을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작(多作)을 한다.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변 작가의 치열한 작업 스타일은 작업실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끊임없이 물감을 덧칠하고 닦아내는 까닭에 어느 화가의 작업실보다 많은 물감통이 놓여 있다. 크고 작은 조각칼도 수십 자루 꽂혀 있다. 그리고 물감을 닦아내는 데 사용된 걸레들이 작업실 한쪽에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형형색색의 물감을 머금은 걸레들이 주는 조형미도 상당해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실제로 변 작가는 이를 설치미술로 선보인 적도 있다.

변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산수(山水)다. 변 작가가 동양화를 전공한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노장사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낙(樂)산수에서 휴(休)산수, 화(花)산수를 거쳐 지금은 유(遊)산수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그녀가 작업실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것 자체가 자연에서 노니는 것이며 그런 까닭에 작업실이 '무릉도원'이 되는 셈이다.

변 작가의 작품은 상처받은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시간도 제공한다. 변 작가의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인들이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자연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 그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여유와 느림의 미학이다. 

◆ 변미영은

계명대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5년 대구대에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금미술회, 대구미술대전, 대구여성미술대전, 영남미술대전, 삼성현대미술대전 등에서 초대 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성아트피아를 비롯해 한전아트센터, 갤러리상, 508갤러리, 포인트갤러리, 예지앙갤러리, 울산현대갤러리, 서울 종로갤러리 등에서 초대전을 가졌으며 대구문화예술회관, 봉성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 홍콩아트페어, 상해아트페어, 스위스 취리히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요코하마국제아트페어 등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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