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엔 적막감이 감돈다. 몇 번이나 마주친 적이 있는 이웃인데 눈을 어디에다가 두어야 할지 몰라 서로 벽에 붙은 안내게시문만 계속 읽는다. 고층이라 올라가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아파트 입구에서 먼저 인사를 하기엔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눈인사라도 했으면 덜 머쓱하였을 텐데….
이사 온 지 1년이 다 되어도 바로 옆집과 같은 동 라인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알고 싶지도 않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근하기가 불편하다. 그냥 혼자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싶은데 같이 타면 헛기침만 나온다. 그리고 다시 벽에 붙은 안내문만 열심히 읽는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얘들아 제발 뛰지 마라, 아래층 집에서 올라온다"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이어서 아내의 잔소리가 다시 한 번 아이들한테 상처를 주고 만다.
아이들은 당연히 아빠가 오면 좋아서 빨리 아빠한테 인사하고 싶어서 뛰었을 뿐인데. 아이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당연히 마음껏 뛰어놀 나이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들한테 갖고 싶은 학용품을 사준다는 핑계를 댔다. 그날 밤 서재 소파에 앉아 나의 어렸을 적 생각에 잠시 눈을 감는다.
좁은 골목 사이로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딱지치기를 하던 코흘리개 아이들의 깨작깨작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엔 많은 집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고, 집집마다 가족들이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던 아주 북적이는 동네였다. 한 집에 다섯 가족은 족히 넘는 것 같았고, 고향을 떠나온 셋방살이하는 가족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문간방 사이로 제 집인 양 들어가서 놀기도 하고 심지어는 밥을 같이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또 하루를 지내다 보면 문간방 사이로 가족끼리 싸우는 일도 잦았다. 한 곳밖에 없는 세면장과 변소는 항상 북적였고 한 번씩은 고성이 오가는 대상이었다.
부부싸움을 하면 온 동네에 다 들렸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기차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약간의 항의도, 소란도 있었지만 그러려니 하면서 다시 시끄러운 일상 속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땐 이웃끼리 서로 집안 대소사를 함께 챙겨주거나 먹을거리가 생기면 서로 나누어 먹었고 제사나 잔치가 있는 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는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같이 기뻐해 주고 나쁜 일이 생기면 같이 슬퍼해 주고 울어주던 기억이 난다.
문간방 사이로 온 가족이 생활하면서도 불평 없이 지내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나도 각박한 세상이다. 내일은 내가 먼저 밝은 얼굴로 내 이웃에게 인사해 보련다.
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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