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에서 예카테리나 2세가 권좌에 오르고 농노들은 심한 도탄에 빠졌다. 농노들은 일주일 중 엿새 동안 귀족'지주의 땅을 경작하다가 남은 하루에 겨우 자신의 땅을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착취당했다. 이에 작은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다 예멜리얀 푸가초프가 이끄는 대규모 농민 반란이 터지게 되었다.
푸가초프는 1742년경 돈카자크의 지주 아들로 태어났다. 문맹이었던 그는 20대에 군에 복무하면서 러시아-튀르크 전쟁 등에 참전했다. 이후 3년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반정부적인 종교 집단인 복고신앙파의 정착촌에서 생활하면서 분리파 정교도가 되었다. 그는 카자크인들에게 튀르크 왕을 따르자고 선동했다는 혐의로 체포됐으나 친절하고 경건한 태도로 간수들을 감화시켜 그들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했다.
그는 31살인 1773년에 예카테리나에 의해 폐위, 암살됐다고 전해진 표트르 3세를 칭하며 토지와 자유를 위해 궐기하자고 호소했다. 처음 80여 명이던 그의 무리는 진압군도 가담하는 등 2만 5천여 명으로 금세 불어나 위세를 떨쳤다. 1년 넘게 러시아 변경 일부 지역을 장악하다가 정부군에 진압됐고 푸가초프는 체포돼 1775년 오늘, 극형을 받고 숨졌다. 이후 러시아 농민들과 민중들은 숨죽여 지냈으나 지식인들이 농노 해방 운동에 나서게 됐다.
김지석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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