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 없어 전기장판도 아껴요"…대구 에너지 빈곤층 수만명

하루하루 힘겨운 겨울나기…내년돼야 정부 보조금 받아

21일 대구 서구 서대구로 한 여인숙. 두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방은 찬 기운이 가득했다. 이곳에 세 들어 사는 이모(72) 씨 부부는 방 안에서도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채 전기장판과 이불에 의지하고 있었다. 수도마저 얼어붙어 끼니도 인스턴트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3.3㎡ 남짓한 방의 월세는 15만원. 몇 달 전까지 폐지를 줍던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쳐 할머니는 병원비와 약값까지 감당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방을 데울만한 돈은 되지 못한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등이 시려. 전기요금이 걱정돼서 전기장판도 맘 놓고 틀지를 못해. 할멈한테 미안한 마음뿐이야."

차가운 날씨에 난방비를 걱정하느라 보일러를 틀 수 없는 에너지 빈곤층이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은 정부 지원조차 받기 쉽지 않아 겨울이 더욱 춥기만 하다.

겨울철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쓰는 에너지 빈곤층은 갈수록 늘고 있다. 소득 양극화로 저소득층이 많아지고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에너지 빈곤층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8%에 달하는 130만 가구에 육박하고 있다.

대구지역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전국의 6.7%에 해당하는 점으로 미뤄 대구에서도 에너지 빈곤층이 9만 가구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저소득층 거주지는 도시가스나 지역난방이 되지 않는 곳이 많아 저소득층 4가구 중 1가구는 값비싼 등유 난방을 하고 있다. 기름 값 부담이 큰 저소득층은 전기장판, 전기난로 등 전기 난방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

대구 달성군 서모(52) 씨 가족은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고 있다. 그나마도 4개월치 전기요금 10여만원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겨울철에는 요금 미납자에게 전력을 제한 공급하는 제도 덕분에 서 씨는 단전은 겨우 면했지만 전력 소모가 큰 전기밥솥이나 온풍기를 켜면 전기가 바로 끊겨버려 밥을 할 땐 조명과 전기장판의 전원을 꺼야 한다. 서 씨는 "돈 10만원이 없어 어두운 주방에서 밥을 하는 아내를 보면 안타깝다"며 "전기장판으로 난방하다 보니 집안 공기가 항상 차가워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에너지 빈곤층은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에너지 복지는 부족하다. 대구시와 각 구'군청 등 지자체의 겨울철 에너지 지원은 전혀 없다. 9만 가구가량의 대구 에너지 빈곤층들은 쪽방 상담소나 한국에너지재단 등 비영리단체를 통해 에너지 비용이나 연탄 등을 지원받는 형편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저소득층 140만 가구에 전기'가스'등유 등을 살 수 있는 에너지 바우처를 지원할 계획이다. 2014년 겨울은 민간의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에너지 보릿고개'인 셈이다.

대구 쪽방 상담소 관계자는 "올겨울 기업이나 개인이 에너지 빈곤층에게 기부하는 금액은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자연히 가구당 지원은 갈수록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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