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세익스피어 명성은 허상으로 가득" 톨스토이의 독설

톨스토이가 싫어한 셰익스피어/ 로에 톨스토이 지음/ 블라디미르 G. 체르트코프 영역/ 백정국 옮김/ 동인 펴냄

셰익스피어에 대한 톨스토이의 '혹독한' 비평을 수록한 책이다.

한 예술 작품의 고전적 위상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 이미 다수의 타인들에 의해 규정된 본질적으로 '잠정적인' 체계다. 그 위상에 지속적인 영광을 부여할 것인가의 여부는 아무리 그 힘이 미약하게 보일지라도 철저히 개인의 비판적인 독서에 달려 있다. 시대와의 불화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읽기를 감행한 사람이 바로 톨스토이였다. 그 대상은 세계적인 대문호로 추앙받고 있는 셰익스피어였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적고 있다. "셰익스피어를 처음 접했을 때 아연했던 일이 떠오른다. 어떤 강렬한 심미적인 쾌락을 경험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걸작이라는 작품들을 차례차례 읽고 난 후 내가 느낀 것은 기쁨은 고사하고 떨쳐버릴 수 없는 혐오감과 따분함이었다. (중략) 내가 몰상식한 것인지 아니면 문명세계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귀결시키고 있는 중요성 자체가 몰상식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일평생 셰익스피어에 대한 전 세계적인 열광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죽기 몇 해 전 발표한 내용이다.

저자는 자신의 종교적'윤리적'사실주의적 예술론에 입각해 셰익스피어의 드라마가 갖고 있는 온갖 문제점들을 '리어 왕'을 중심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명성이 '지레짐작'에 근거한 다분히 작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조만간 그 허상이 드러남과 동시에 추락할 것으로 보았다. 톨스토이의 예상은 빗나갔지만, 그의 글은 이 시대 셰익스피어가 누리고 있는 난공불락의 명성에 익숙한 독자들과 그에게 절대적인 경의를 표하는 상아탑의 학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시대와의 불화를 아랑곳하지 않았던 톨스토이의 도발적인 견해는 그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소위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일군의 문학작품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얼마나 피동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읽지 않는 한 고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톨스토이의 셰익스피어 비판이 실제로 통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혹평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고전의 반열에서 강등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감정적이고 때로는 터무니없을지언정 톨소토이의 거친 주장은 셰익스피어를 이해하는데 분명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역자인 백정국은 고려대에서 영어교육과 정치외교를 공부했으며 미국 럿거스대와 UC데이비스에서 셰익스피어를 연구했다. 현재 숭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70쪽, 1만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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