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작은, 한없이 위대한/ 존 L. 잉그럼 지음/ 김지원 옮김/ 이케이북 펴냄
30억 년 전 산소혁명을 통해 지금과 같은 지구 모습을 만든 주인공은 미생물이었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미생물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미생물과 함께 지낸다.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싼 친숙한 환경에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조건에서도 살아가는 미생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미생물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의 비린내가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금방 잡아 올린 바닷물고기는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역한 비린내를 풍기는 것은 바닷물고기에서만 자라는 몇몇 박테리아가 트리메틸아민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바닷물고기가 죽자마자 박테리아는 물고기 표면에서 증식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산소호흡을 통해 대사 에너지를 얻는데, 물고기 표면 구석구석에서 산소를 빼앗는다. 그리고 산소를 다 소모하면 산소가 필요없는 방식으로 대사 에너지를 획득한다.
물고기에서 자라는 박테리아는 부족한 산소를 대신하기 위해 바닷물고기에 풍부한 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trimethylamine N-oxide)라는 대체 화합물을 이용한다. 이 과정을 통해 미생물은 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를 역한 냄새가 나는 트리메틸아민(trimethylamine)으로 바꾼다.
민물고기는 부패할 때까지 그다지 역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민물고기에는 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닷물고기에만 유독 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가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는 삼투압 조절 물질로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고농도의 소금물에서 체내 균형을 잡는 것을 도와준다. 이 물질 덕분에 바닷물고기의 세포에서 물이 빠져나가 몸이 찌그러지지 않는다. 트리메틸아민 옥사이드는 또 일종의 부동액 역할을 해 물고기들이 심해의 높은 수압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적조 때 나타나는 미생물 일부는 물고기를 대량으로 죽일 수 있는 강력한 독을 생산하지만 적조가 인간에게 미치는 위험은 대체로 간접적이다. 굴, 조개, 가리비, 홍합 같은 여과섭식형 연체동물들은 별 영향을 입지 않지만 다량의 독성이 축적되어 포식자에게 해를 입히거나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세심하게 관찰한 서양인들은 '영문 명칭에 r이 없는 달(5월부터 8월까지)에는 해산물을 먹지 말라'는 속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름철 따뜻해진 물은 해산물에 독성이 있을 위험을 높인다.
이 책은 미생물이 우리에게 '이롭다' 혹은 '해롭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미생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찾아다닐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미생물은 수십억 년 동안 지구 상에 존재해 왔으며, 우리의 일상은 미생물의 천국이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가 먹는 요구르트, 우유, 생선, 샴페인, 김치, 심지어 물에도 미생물이 존재한다. 숙성되고 있는 와인의 경쾌한 기포 터지는 소리까지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생물은 독성을 만들어내 인류에게 질병을 주기도 했다.
1951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맥각중독증은 마을 전체를 광기에 휩싸이게 했고, 1520년 발생한 천연두는 당시 2천만 명이었던 멕시코의 인구를 약 100년 만에 160만 명으로 감소시켰다. 사스(SARS)와 신종플루, 에이즈 등 신종 변종 바이러스들 역시 서로 다른 미생물의 결합이나 진화로 탄생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미생물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하는 백신과 약 역시 미생물에서 얻는다.
책은 '우리 주변은 온통 미생물이며 우리도 결국 작은 미생물로 이뤄진 생명체'라고 말한다. 특별히 미생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이 책을 다소 딱딱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지은이 존 L. 잉그럼은 평생 미생물을 관찰하고 연구해온 미생물 연구자이자, 작가이며 자연주의자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미생물학과 명예교수이며, 미국 미생물학회 회장을 지냈다. 447쪽, 1만9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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