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만병통치약서 탄산음료로…코카콜라 변천사

욕망의 코카콜라/김덕호 지음/지호 펴냄

코카콜라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소화불량이나 두통 등의 치료제로 팔렸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났고, 남부지방 사람들은 전쟁에 패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황폐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의사는 부족하고, 환자는 넘쳐났으며, 병이 나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외국산 매약들이 만병통치약처럼 팔렸고, 이를 모방한 매약들도 넘쳐났다.

당시 매약은 '특허매약'이라고 불렸는데, 약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을 말하며 피로회복,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는 성분이 들어 있었다. 특허와 별 관계가 없었지만 약 성분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특허라는 별칭을 붙였다고 한다. 코카콜라 제조법의 비밀은 아마 여기서 기원하는 듯하다.

약제사였던 팸버튼은 프랑스에서 들어온 만병통치약 '뱅 마리아니'의 주성분에 콜라 열매에서 추출한 내용물을 섞어 '프렌치 와인 코카'라는 매약을 만들었다. 이 약은 잘 팔렸다. 그러나 펨버튼이 꽤 큰돈을 만지려 할 무렵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술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고 1885년 11월 25일 투표를 통해 애틀랜타와 그 주변의 풀턴 카운티에는 금주법이 통과되었다.

이에 펨버튼은 '프렌치 와인 코카'에서 알코올 성분을 뺀 코카콜라를 만들어 탄산음료 매장에서 판매했다. 당시 콜라 광고는 음료보다는 매약의 기능을 강조했다. 그래야 더 잘 팔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약의 위험이 알려지면서 미국 정부는 순정식의약품법을 만들어 매약을 제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코카콜라는 음료로 변신을 꾀하게 된다. 지역적으로는 미국 남부를 벗어나 전국적인 음료로 확대되었다. 관건은 역시 광고였다. 한때는 '만병통치'를 들먹이며 이목을 끌었지만 이제는 지속적인 광고와 판촉물, 무료시음권 등으로 시장을 넓혀갔던 것이다. 광고비의 증가와 매출 증가는 거의 비례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설탕 품귀와 1929년 대공항으로 많은 품목이 위기를 맞았지만, 코카콜라는 거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 단돈 5센트로 70년 동안 동일한 품질의 음료를 마실 수 있다는 데서 미국인들은 큰 위안을 얻었고, 대공황 기간에조차 소비자들은 코카콜라를 마시는 5센트를 아끼지는 않았다. 특히 대공황 기간에는 미국인들에게 '시름을 달래주는 음료'로 위치를 다질 수 있었다.

코카콜라는 미국의 '토템음료'이며 세계시장을 장악한 음료다. 이 책은 코카콜라야말로 초기부터 광고를 가장 잘 활용한 제품이라고 말한다. 초기 매약이었던 시절, 매약의 특성상 다른 제품과 효과가 별반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는 광고가 제품을 알리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이후로는 혁신과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광고로 창출한 매출은 다시 광고로 소비되었고, 다시 매출이 되어 돌아왔다. 즉 코카콜라의 역사는 소비자본주의의 역사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은 모든 분야에 위기를 가져왔지만, 코카콜라는 이 위기를 기회로 잡았다. 코카콜라가 병사들의 사기진작용 군수품으로 선정되면서 설탕 배급 문제가 해결되었고, 전쟁터에 코카콜라를 공급하기 위해 미국 정부 예산으로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가까운 곳에 수많은 공장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코카콜라의 성공에는 높은 회전율이 숨어 있다. 낮은 가격의 제품이라도 많이 팔리기만 하면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코카콜라는 보여주었던 것이다.

코카콜라는 필수품이 아니다.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시면 된다. 콜라는 성분의 99%가 설탕과 물로 이루어진 탄산음료다. 그럼에도 우리는 코카콜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코카콜라는 130년 동안 끊임없이 '소비자의 욕망'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작은 이윤에 높은 회전율, 필수품이 아님에도 광고로 욕망 부추기기, 자본주의의 세계화…. 코카콜라는 그야말로 소비자본주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6쪽, 2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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