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체코 프라하를 다녀왔다. 부다페스트에서 '임레 나지'의 동상 앞에서는 숙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헝가리 국민의 여망을 받들었던 나지는 1956년 탈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와 중립을 선언하였다. 소련은 6만 명의 군대와 탱크를 동원하여 침공하였고 헝가리인 4천 명이 사망하고 나지 등은 처형되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장되고 말았다. 그러나, 1989년 헝가리 공산당 내 개혁파들은 나지의 추도식을 주도하였고 20만의 부다페스트 시민이 참여하여 민주주의로의 개혁을 다짐하였다.
국회의사당 대각선 방향의 작은 공원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나지의 동상은 10여m 길이 정도의 실개천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실개천을 넘어가는 조그마한 무지개 다리 위에서 반쯤 돌아선 모습으로 국회와 다뉴브강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 서 있는 나지의 모습은 어린 꼬마들도 언제든 다가가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실개천을 건너는 아치형 다리는 미래를 향하는 희망의 통로인 것이다.
체코는 1938년 나치독일에 합병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점령당했다가 전쟁 뒤에는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했다. 그런데 1968년 둡체크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장하며 민주, 자유주의 노선을 걷기로 천명하였다. 바츨라프 광장에 50만여 프라하 시민이 모여 '프라하의 봄'을 환영하고 지지하였으나, 그 파장이 동유럽 전체로 퍼질 것을 두려워한 소련이 16만 명의 병력과 탱크를 동원하여 바츨라프 광장까지 진군하여 무참하게 진압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20년간 역사의 흐름은 소련의 몰락과 동유럽 민주화의 물결을 더욱 거세게 하였고 1989년 체코 공산정권은 비공산 당원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이어 반정부 인사였던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당시 공산독재 인사들에 대한 체코인들의 분노는 비등점에 이르러 있었다. 역사청산 작업도 상당히 험악하게 갔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였다.
그러나 '역사의 상처를 서로 위로하고 감싸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라고 강조했던 하벨 대통령의 정책은 체코인들의 공존, 공생을 위한 큰 바탕이 됐다. 그는 공산독재 치하에서 자행된 폭력, 탄압에 대해 청산의 일정한 기준을 세웠다. 과거 공산당, 군, 경찰, 정보기구의 고위 간부들에 대한 처벌은 분명히 했지만 일반 공산당원들에 대해서는 관용과 아량을 베풀었다. 이는 권력 이양을 수월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체코의 전환기에 발휘된 정치사회적 지혜를 보면서 서로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는 것이 '너 죽고 나 죽기 식'의 이전투구와 흠집 내기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 통합을 이뤄나갈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차이를 극복해가고, 그 과정에서 동질감을 확대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원칙을 함께 세워나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정리한 문제는 다시 들춰내서 정쟁의 불쏘시개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지혜와 관용이 필요한 것이다.
2012, 2013년의 한국 정치는 극한 대립으로 과거사에 매몰되어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 기성 정치인들은 싸움닭 모습만 보여 왔고 새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없어져야 할 병폐인 지역주의에 호소하며 정치판 한모퉁이를 차지하려 애쓰고 있다.
정치가 이러하니 사회 모든 부분에서 협의와 타협을 통한 화합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고 국민들의 일상생활도 안정되기가 참 어렵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헝가리와 체코의 역사를 곰곰이 되씹어보며 우리 사회 신뢰기반을 구축하는 데 분발해주기를 요망한다. 국민들도 정치판의 언동에 휘둘리기보다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어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기 스스로 겸허하게 돌아보고 관용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김성수 인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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