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경험들은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차갑도록 시렸던 겨울날의 영상이나, 여행지에서의 영롱했던 기억,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된 누군가의 춤사위는 예술가의 머릿속에서 이합과 집산과 재창조라는 단계를 거쳐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난다.
현재 대구시립무용단을 맡고 있는 박현옥(55'대구가톨릭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예술감독은 "안무를 하는데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인생의 경험"이라고 했다. 주제적인 면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 삶의 원형이 신화나 설화, 문학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생각해 처용, 가시리, 햄릿머신, 바리공주, 내 이름은 빨강, 동물농장 등의 작품을 춤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박 감독은 "자연이 주는 이치와 미학에서 춤을 구성적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많은 춤을 안무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몸 움직임이 표현하는 공간적 감정의 의미와 구성요소에서 많은 영감을 끌어내며 흥미롭게 안무하는 편"이라고 했다. 특히 작품의 주제가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면 아예 몇 주 동안은 춤에서 관심을 떼고 책이나 영화 등에 심취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박 감독 만의 특징이다. 늘 해 오던 그만의 춤 패턴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박 감독이 무용을 시작한 것은 6살 무렵이었다. 소녀는 춤바람이라는 것도 난 거 마냥 팔랑팔랑 날갯짓을 하는 일이 정말 좋았다. 석류가 빨갛게 익어가는 시골의 대청마루에서 바구니를 옆에 끼고 춤을 췄다. "어머니께서는 끊임없이 피아노를 배우길 권하셨지만, 제 뜻을 꺾진 못하셨어요. 그래서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며 현대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죠." 몸 자체가 도구가 되는 직업이다 보니 무엇보다 고달픈 길이었지만 기어이 그 길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현대무용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시절. 박 감독은 "전통무용에 비해 새롭고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마냥 끌렸던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현대무용을 전공하며 그의 잠재된 끼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실험적이고 좀 더 참신하며 젊은 패기를 보여줄 수 있는 소극장 무대를 개발하는 일에 앞장선 것이다. 1984년 동아쇼핑센터 소극장 무대를 통해 현대무용을 소개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에도 봉산문화회관, 예술발전소 등을 통해 젊은 무용인들이 부담은 덜면서 보다 많은 것을 표출해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박 감독은 그의 인생에 가장 찬란했던 기억으로 모교 교수로 부임한 일과, 대구시립무용단에서 감독을 맡게 된 두 가지를 꼽았다. "연어가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회귀하듯, 저도 제가 처음 열정을 가졌던 그곳에서 계속해서 영감을 받으며 안무를 하고, 제자들을 키워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지역 무용인으로서 현재 시립무용단을 이끌면서 무한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낀다는 박 감독은 앞으로 '무용 치료'를 통해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누구나 몸을 통해 소통하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바로 무용 치료. 박 감독은 국내에서 첫 번째로 무용 치료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국커뮤니티예술학회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박 감독은 "지역 공동체를 위한 커뮤니티 댄스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보듬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감독은 "화합과 협력은 대구 무용계에도 특히 필요한 작업"이라며 "한국 무용계에서, 특히 현대무용에 있어서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대구가 한 걸음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묵은 갈등과 학연 등의 벽을 뛰어넘어 대구 무용계가 하나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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