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팔공산 수태골 산불감시원 박헌택 씨의 하루

"기도용 촛불 보면 겁이 덜컥"

26일 팔공산 수태골 초소를 담당하는 산불감시원 박헌택 씨가 등산객들에게 불조심을 당부하고 있다. 서광호기자
26일 팔공산 수태골 초소를 담당하는 산불감시원 박헌택 씨가 등산객들에게 불조심을 당부하고 있다. 서광호기자

이달 5일과 8일 팔공산 자락의 왕산에서 잇따라 불이나 대구시기념물 신숭겸장군 유적지가 화마(火魔)에 휩싸일 뻔했다. 21일 북구 함지산에서도 불이 났다. 24일 새벽엔 수성구 파동의 한 야산 산불초소가 비어 있는 틈을 타 누군가가 추위를 피하려다 불을 내기도 했다.

다행히 큰불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마른 낙엽이 널린 겨울엔 작은 불씨가 애써 가꾼 산림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연휴에다 성묘 등으로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요즘, 화마로부터 산을 지키려는 산불감시원의 발길은 더욱 분주해진다. 26일 기자가 팔공산 지키기에 나선 산불감시원의 바쁜 하루를 동행했다.

◆등산객에게 불조심 당부

26일 오전 9시 15분. 팔공산도립공원 산불감시원 박헌택(62) 씨가 산 중턱에 있는 산림보호계 관리본부에 도착했다. 그는 무전기와 일지를 챙긴 뒤 곧바로 담당구역인 수태골 산불초소로 걸음을 옮겼다. 박 씨는 휴일을 맞아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산불 조심합시다. 인화성 물질은 맡겨 두고 가세요"라며 불조심을 홍보했다.

오전 10시. 관리본부로부터 무전이 왔다. 박 씨는 "근무지 도착, 이상무"라며 본부에 상황을 알렸다. 15분을 걸어 올라가니 '쉼터'가 나왔다. 박 씨는 "예전에는 이곳에서 가스버너로 음식을 해먹는 등산객이 많았으나 요즘은 없다"며 "간혹 담배꽁초가 보이나, 맨땅에 비벼끈 것이 대부분이다"고 했다.

기자와 같이 순찰로를 돌던 박 씨는 얼마 전 지묘동 왕산에서 난 산불이야기를 했다. "그때 비번이었는데, 팔공산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을 졸였어요. 몇 년 전 파계사 인근에 불이 났을 때 큰불을 잡고 나서 산불감시원이 잔 불을 끄느라 굉장히 고생했지요. 재와 그을음이 온몸을 덮었고, 나무 탄내를 맡으며 갈퀴로 속불이 있나 없나 샅샅이 뒤졌습니다."

박 씨는 자신들의 고생이야 참을 수 있지만, 작은 실수로 대구시민의 쉼터인 팔공산이 훼손됐다는 게 가슴 아팠다고 했다.

◆기도용 촛불 보면 잔뜩 긴장

낮 12시 30분. 초소 앞 식당에서 식사한 박 씨는 오후 1시쯤 무전 보고를 마친 뒤 다시 산에 올랐다.

"불도 불이지만 산기슭에 있는 움막 등을 보면 얼른 달려간다"는 박 씨는 "그곳에서 취사나 전열기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커 화재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주일 전에도 움막 한 동을 철거했다. 최근 동봉 근처에서 불이 났는데 발화점이 움막 옆이었다고 했다. 등산객과 합동으로 초기에 불길을 잡아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대형 산불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박 씨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기도처.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 즈음이 되면 팔공산의 굿당에는 많은 무속인이 기도하러 옵니다. 그들은 초를 피워놓고 기도를 하는데, 그 일대가 반짝일 만큼 촛불이 곳곳에 있습니다. 초가 다 탈 때까지 불을 켜 두는 데 혹시나 불이 옮겨 붙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5년째 산불감시원 일을 하는 박 씨는 9개월마다 재계약해, 근무 연속성이 좋지 않다고 했다. 산불감시원은 불만 감시하는 게 아니다.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꽃도 심고 풀도 베야 하는 데 초보자는 요령이 부족해 애를 먹는다고 했다.

◆속불 끄는 것도 감시원의 역할

박 씨처럼 팔공산 대구권역을 담당하는 산불감시원은 모두 9명. 이들은 당번과 비번을 정해 보통 하루 5명이 수태골'탑골'굿당'갓바위'파계사 인근에 있는 초소로 이동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산불을 감시한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초소로 가는 데는 차로 이동하는 곳도 있지만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다. 적게는 10분, 많게는 50분을 걸어야 한다. 이들은 담당 초소에서 매일 왕복 30분의 순찰코스를 여러 차례 돈다. 오전 10시, 오후 1시, 3시에는 관리본부로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 초소 안에는 작은 불을 진화하는 데 쓰이는 1.5ℓ 물 펌프와 갈퀴 등이 항상 비치돼 있다.

산불감시원은 산에 불이 나지 않게 감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불이 나면 즉시 사무실로 연락해 초기 진화를 유도한다. 큰불이 잡히면 속불을 끄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불이 꺼져도 속불 감시는 보통 3일 후까지 계속된다.

이날 오후 2시 30분, 탑골초소서 만난 이동진(59) 씨는 마침 순찰을 마치고 초소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몇 년 전 팔공산 순환도로 심천랜드 근처에서 불이 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당부했다.

"누군가 막사에서 전기로 난방을 하다 누전으로 불이 났었죠. 제법 불이 커져 소방헬기가 떴는데 몇 차례 물을 뿌리고서 20분 만에 겨우 진화했죠. 자연은 그대로 놔두면 절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작은 실수와 방심이 산불의 원인이죠. 불이 붙는 데는 1초밖에 걸리지 않지만 한 번 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진화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산에 오를 땐 절대 인화성 물질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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