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식언과 탐욕 칼로리

해가 바뀌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잇살 걱정도 는다. 나잇살은 근육량 감소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35세를 넘기면서 근육량이 남성은 10년에 1.5㎏, 여성은 1㎏씩 줄어든다. 근육량이 줄어들면 몸에 지방이 쌓인다. 운동과 식사량에 변화가 없더라도 해마다 평균적으로 0.3%씩 몸무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와 달리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말(言)이다. 사람이 입을 통해 내는 소리, 말은 초당 100~9천㎐ 사이의 진동 주파수이다.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간 진동 주파수는 거둬들일 수 없다. 그런데도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고 믿어서인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다시 삼켜 버린다. 이른바 식언(食言)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식언은 한 번 입 밖에 낸 말을 도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약속한 말대로 지키지 아니함을 일컫는다. 영미권에서도 식언은 'eat one's words'로 표현되는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한가 보다.

식언과 관련한 고사가 있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중신인 맹무백과 계강백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맹무백은 노나라 왕 애공(哀公)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곽중이라는 신하에게 말을 건넸다. "곽 공은 그동안 몸이 많이 부었구려." 그러자 옆에 있던 애공이 한마디 던졌다. "그럴 수밖에요. 그대들이 한 말을 곽 공이 하도 많이 주워 먹었으니 어찌 살이 찌지 않을 수 있었겠소." 맹무백과 계강백이 곽중 앞에서 자신을 헐뜯은 사실을 알고 있는 애공이 뼈 있는 말을 던진 것이다.

말을 먹는 데는 정치인들이 단연 선수급이다. 공약을 이행할 의지가 박약한 상태에서 일단 당선부터 되고 보자며 마구 공약을 던져놓고는 식언을 일삼는다. 지난 대선 당시 주요 공약인 기초연금제가 축소됐고 경제민주화 추진이 조기 종료되는 등 핵심 공약이 줄줄이 폐기됐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마저 '없던 일'로 만들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고 공약 지키는 정치인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공약파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감증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의 위기이다. 말은 먹어도 살이 찌지 않지만 그 안에는 '탐욕'이라는 이름의 고약한 칼로리가 들어 있다. 세상을 병들게 하는 탐욕 칼로리, 이제 그만 섭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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