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불안도 힘이 된다면

'편하지 않다'는 뜻의 불안(不安)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두려움의 감정 말이지요. 안정되지 않고 뭔가 뾰족한 절벽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

좋아하는 가수가 부르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라는 노래를 가끔 흥얼거리는데요. 그럼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곤 하지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친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노래의 첫 구절을 반복해서 부르다 보면 어느 사이인가 마음이 편안해지기까지 하니 참 스스로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거 같아요.

얼마 전 비틀스 멤버였던 '존 레넌'을 즐겨 그리는 화가 권기현 씨의 전시회에 갔었는데요. 그 전시회에서도 예의 '존 레넌'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전시돼 있었지요. 몇 번을 덧칠해서 마치 부조인 듯 도드라진 얼굴 곳곳의 색감들이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어두우면서도 눈부실 만큼 밝은 기운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어요. '존 레넌'의 삶의 흔적인 듯, 다양한 색들 속에서 우수와 해맑음, 단호함과 유연함이 어우러져 있는데, 그림 속 '존 레넌'의 눈빛은 '가장 명징한 눈빛'이라는 인상을 받았지요. 그야말로 부드러우면서도 직시하는 강렬한 눈빛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특히 코발트블루의 색감이 주는 안정감과 어우러져 더욱 빛났지요.

작가에게 물었지요. "저 느낌은 무얼까요? 어떤 생각을 하며 그림을 그리시나요?"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의 그림은 불안에서 나옵니다. 어릴 적의 트라우마, 괴테를 읽으며 세상을 혐오했던 느낌, 그리고 예술가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경계에서 겪는 경제적 갈등,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조리들, 그것들로 인해 불안해지는 자신." 그는 어쩌면 자신의 그림의 힘은 불안일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반전운동을 펼치고 평화를 사랑했던 '존 레넌'을 그리며 위안을 얻는다는 그가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주 오래전 한 스님한테서 들은 우화 한 토막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그 출처를 알 수 없지만 '흑서백서'(黑鼠白鼠)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군요.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사자에게 쫓기게 되었답니다. 사자를 보고 기겁해 도망치던 그 사람은 허허벌판에서 우물을 발견했고, 곧바로 그쪽으로 뛰어갔는데 다행히 밧줄 하나가 우물 안으로 늘어뜨려져 있었답니다. 급한 대로 그 밧줄을 타고 우물 아래로 내려가는데 중간쯤 가다 보니 우물 바닥에 독사들이 득시글거려서 그만 중간에서 멈춰버렸답니다. 우물 위에서는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그 아래에는 뱀이 우글거리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가 양쪽에서 밧줄을 갉아먹고 있더랍니다. 이 사람의 운명은 그야말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상황에 놓인 거지요. 곧 죽어야 할 운명에 놓인 이 사람이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고 한탄하는데 그때 입안으로 한 방울의 달콤한 꿀이 떨어지더랍니다. 위를 쳐다보니 우물 중간 틈에 벌집이 끼어 있고 거기에서 떨어진 꿀이었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도 잊고 오로지 다시 한 번 그 꿀을 맛보려고 입을 벌리며 꿀이 떨어지길 기다렸답니다."

꿀이 입에 닿는 그 짧은 순간, 그 사람은 행복했겠지요. 그때 이야기를 해주신 스님은 사방팔방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그것이 인생이고 그 꿀 한 방울이 바로 행복이며 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오래전 들은 이야기인데도 힘들 때면 기억 속에서 꺼내 자신을 다독여보곤 하는 우화지요.

요즘 인기 많은 철학자 강신주 씨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삶은 일단 아프다. 가끔가다 아픈 게 가실 때가 있는데, 우린 그걸 행복이라고 말한다"고. 늘 행복하다면 행복(幸福)이라는 단어가 굳이 우리가 생각하는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그 상태는 아니겠지요.

불안하다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 평온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게 아닐까요? 불안도 힘이 되고 슬픔도 힘이 되고 분노도 힘이 된다면 용기도 생기고 살맛도 좀 더 나지 않을까 해서요. 무엇이라도 지펴야 따뜻해지니까요.

권미강/대전문학관 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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