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판단을 하기에 미숙하고, 아직 성적 자기결정권이 확립되지 않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으면 강압성이나 폭력성이 없었더라도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력에 의한 성폭행으로 처벌받게 된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가 비록 성관계 당시 미성년자에게 폭행'협박 등을 행사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더라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력에 의한 성폭행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급증하는 추세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현명한 판결이다.
고 모 씨는 2012년 12월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미성년 피해자와 술을 마신 뒤 모텔로 가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 2심 재판부는 미성년 피해자가 팔짱을 끼고 모텔로 들어갔고 불안해하거나 위축되지 않았으며, 모텔에서 나온 뒤에도 연락한 점 등을 근거로 고 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상고심은 술을 마신 피해자가 나이 차가 있는 고 모 씨와 모텔방에 있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반항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특별히 저항하지 않았더라도 가해자가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性)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 김한표(거제) 의원은 우리나라 성폭력 발생 건수가 2008년 1만 5천970건에서 2012년 2만 2천935건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연령대에서 성폭력이 늘고 있지만 가장 심한 것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다. 전체 성폭력 사건의 35~38%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있는 한 단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심한 것은 성폭력의 구체성이다.
여성가족부가 2011년 한 해 동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1천682명)와 피해자(2천180명)를 분석한 결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의 51.7%가 가족이나 친지, 이웃 등에 의해 벌어졌다. 이는 사회 통념상 받아들일 수 없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 현장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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