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여는 효제상담뜨락] 황혼이혼과 '털어놓기'

근래 노부부들이 황혼이혼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가정법원으로부터 의뢰되는 이혼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노부부들이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대개 이들은 남편 쪽보다는 아내 쪽에서 혼인소멸 의사를 전하는 경향이 많다. 이별을 통고받는 남편들의 심리 특성은 대체로 강한 성격에, 가부장적이며, 독선적이고 일방주도식의 역기능적 의사소통방식에 익숙한 편이다.

그에 반해 아내는 남편의 강압적이고 보수적인 권위에 저항하지 못하고 행복이라고는 느껴볼 수 없던 소극적인 여성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황혼기에 와서야 남은 인생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 긴 결혼생활 동안 단 한 번도 행복한 시간과 여자로서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더 늙기 전에 여성으로서 존재가치를 새로이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갖고 싶다는 심리적 변화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혼으로 가기 전 간과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혼하고 싶은 심리적 배경에 대해 '털어놓기'를 통해 가질 수 있는 부부간 대화의 시간이었다.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을 둔 어느 노부부의 아내가 필자의 말대로 남편 앞에서 '털어놓기'를 시작했다. "저 사람은 일평생 자기 어머니와 형제만 챙긴 사람이에요. 나를 늘 이방인처럼 대했어요. 이제는 내가 남편을 이방인처럼 대할 때가 왔어요."

이렇게 아내는 한 시간이 넘도록 마음속에 쌓였던 것들을 쏟아냈다. 남편도 끝까지 인내하며 그 어떤 방어나 저항 없이 들어주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내는 부부 대화를 통해 자연적인 치유현상으로 깨달음을 느꼈던지, 필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남편의 행동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음이 아니라,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충정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내는 비로소 남편의 이기적인 선택은 남편 가족들만의 공유된 아픔을 보호하는 또 다른 '미숙한 방어'였음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 당시, 홀어머니와 형제들에 대한 편듦은 가난을 견뎌낸 그들 사이의 공유된 감정과 눈물 어린 상처로 뭉쳐진 동맹관계의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는 듯했다.

헤어지기 전 부부가 꼭 해볼 가치가 있는 '털어놓기'는 부부를 다시 손잡게 하는 위대한 가교일 수 있다는 게 필자의 부부상담 철학이다.

김미애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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