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나로도 해돋이

남도 여행길 묵은 펜션에선 방 안에서 아침 해가…

새해 아침 해돋이를 보겠다며 서둘러 문밖을 나서 본 적이 없다. 송년 해넘이나 추석 보름달 구경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기회에 해가 뜨면 그냥 볼 뿐 안달하며 찾아 나서지 않는다. 한가위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도 그만, 날씨가 흐려 달이 보이지 않아도 안타깝지 않다. 해와 달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고무신 거꾸로 신고 멀리 도망칠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변과 산정에 모인 해돋이 인파들은 기복신앙의 열렬한 신도이거나, 때로는 '빛'이란 새해 첫 작품의 참배객으로 동원된 엑스트라처럼 보일 때도 있다.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무슨 말을 전하고 싶어 그렇게 바삐 서둘러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다.

해돋이와 달맞이를 무슨 종교의식 치르듯 하는 친구가 있었다. 동행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고도 몇 번 퇴짜를 놓았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기별이 온다. "해돋이 광경이 근사한 캘린더를 미리 구해놨어"라며 '누워서 아침 해를 맞겠다'는 와배(臥拜) 의사를 밝히면 "넌 게을러서 탈이야"란 즉답이 돌아온다. 맞다. 나는 게으름뱅이다. 혼곤한 늦잠의 유혹은 아주 멋스러운 여인의 윙크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니는 아들을 목사로 만드는 게 꿈이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들어줄 생각이 조금은 있었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당사자인 나는 일찍부터 "헛수고 그만 하시지요" 하고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건 어머니의 기도 약발이 약해서가 아니라, 늦잠 매력을 새벽기도와 맞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해와 달을 좋아한다. 선 앤 문(Sun and moon) 또는 일월(日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해와 달은 하나님과 어머니처럼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존재다. 하나뿐인 것은 모두 위대하다. 만일 남녀 하나님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GOD'에 대한 존경지수는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남자 하나님'과 '여자 하나님'을 추종하는 세력들끼리 편이 갈라져 예수와 석가, 그리고 마호메트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로 종교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해와 달은 암컷과 수컷이 없고 온리 선(Only sun), 온리 문(Only moon)으로 수절해 왔기 때문에 지금껏 존경의 가치가 하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 찧던 달은 미국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에 의해 순결이 약간 짓밟히긴 했지만 여전히 경의와 우러름을 받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나는 3대가 공덕을 쌓아야 겨우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천왕봉의 해돋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또 추석 보름달보다 열 배쯤 아름답고 솥뚜껑보다 더 큰 달을 지리산 종주 중 벽소령 산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날이 마침 '적벽부'를 읊은 소동파가 친구 둘을 초청하여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하던 칠월 보름인 백중(伯仲) 날이었다. 새벽 3시쯤 오줌이 마려워 산장 밖으로 나왔더니, 내 머리 위에 엄청나게 큰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날 이후 다른 어떤 보름달도 보지 않겠다는 맹세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동안 해돋이와 해넘이는 물론 보름달 구경조차 잊고 살아왔다. 충남 서천의 마량포구를 비롯하여 서해의 여러 곳은 일출과 일몰을 하루 만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당진의 왜목마을에선 일출, 일몰, 월출까지 삼본(三本) 동시상연으로 즐길 수 있지만, 해 뜨고 달 뜨는 광경을 보기 위해 머물거나 기다리진 않는다. 천왕봉과 벽소령에서의 감동이 줄어들까 저어하기 때문이다.

최근 남도여행을 떠나 나로도 하얀노을 펜션(유경순'061-833-8311)에서 머문 적이 있다. 나로도 제2대교 입구에 위치한 이곳은 우선 공기가 맑고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데다 바다가 정원 안으로 밀고 들어와 있는 형상이어서 풍수적으로도 아주 멋진 곳이다.

나의 도반들은 인근 어시장에서 참돔, 우럭, 낙지 등 횟거리를 푸짐하게 사와 근사한 저녁 식탁을 마련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이곳 펜션은 비경 하나를 감춰두고 있었다. 101호 방 안에서 동쪽 창문으로 내다보면 해돋이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틀 동안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온전한 해돋이 광경을 한 발짝도 걷지 않고 본 것은 조상 6대의 공덕이 작용한 탓일까.

계산할 때 혹시 해돋이 값을 물릴까 봐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해돋이 안 봤어요. 안 봤다니깐요."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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