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냐가 1941년 12월 28일 아침 12시에 죽었다/할머니가 1942년 1월 25일 낮 3시에 죽었다/레카가 1942년 3월17일 아침 3시에 죽었다/바씨아 아저씨가 1942년 4월13일 밤 2시에 죽었다/레샤 아저씨가 1942년 5월 10일 낮 4시에 죽었다/엄마가 1942년 5월13일 아침 7시30분에 죽었다/사비체프 집안 식구가 죽었다/모두 다 죽었다." 독일군의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의 참상을 전하는 타냐 사비체바라는 소녀의 일기이다. 타냐도 1942년 봄 후방으로 호송됐지만 영양결핍으로 1944년 사망했다.
1941년 9월8일부터 1944년 1월27일까지 872일간의 레닌그라드 봉쇄는 기아(飢餓)를 무기로 사용한 '반인륜' 전쟁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봉쇄가 시작될 무렵 레닌그라드의 비축 식량 중 설탕과 과자류(60일분)를 제외한 밀, 귀리 등 기초식량은 30일분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를 방어하려면 군인과 노동자에게 우선적으로 식량을 배급할 수밖에 없었다.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 민간인들은 굶어 죽지 않으려고 무슨 짓이든 했다. 새, 개, 고양이를 먹었고, 의약품을 먹었으며, 아교와 가죽으로 수프를 끓였다.
그것도 바닥이 나자 인육(人肉)을 먹었다. 경찰은 '기동타격대'까지 만들어 강력히 단속했지만 인육을 파는 상점까지 있었을 정도로 식인은 널리 횡행했다. 공식 통계상 식인 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260명이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학자는 별로 없다. 아마 수천 명이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아사(餓死)는 피할 수 없었다. 가장 약한 사람이 앞장을 서고, 그다음으로 노인과 아기, 여자와 아이들 순으로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 수는 10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러시아 작가 다닐 그라닌(96)이 지난 27일 독일 의회 연단에 올라 독일이 레닌그라드 사람들에게 한 짓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군인들은 군인들과 싸워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독일군은 전투를 위해 군인이 아닌 굶주림을 보냈습니다." 그를 초청해 그런 꾸짖음을 경청하고 그런 꾸짖음에 엄숙하고 단호한 기립박수로 화답한 독일의 용기와 양심이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일본은 이런 용기와 양심이 없다. 그래서 일본은 '2류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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