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저마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으로 향할 때 따뜻한 가족과 친척의 품을 뒤로하고 일터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해마다 일터에서 명절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의 수고'가 다른 사람들의 평안으로 이어진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구슬땀을 흘린다. 명절이면 더 바쁜 그들을 만나봤다.
◆교통방송 리포터 우효진 씨
실시간 교통상황을 전하며 대구경북민의 귀향'귀갓길을 돕는 대구교통방송(TBN)은 명절 연휴 동안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리포터 우효진(26'여) 씨도 명절은 가장 바쁘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때다.
연휴 내내 오전 6시 30분 출근해 매시간 10분과 20분, 40분(1시간에 3번)에 실시간 차량흐름을 전해야하는 그는 "명절 때는 고속도로는 물론 우회도로, 진입로, 시내교통 흐름까지 모두 꿰뚫어 가장 유용한 정보를 내보내야 하니 정보수집부터 방송까지 마치 전쟁을 치르는 기분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출근하자마자 대구경찰청, 한국도로공사의 교통 상황을 점검하고 교통통신원들이 쏟아내는 정보를 정리하다 보면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 보통 2천500건이던 교통제보도 명절기간엔 3천 건이 넘는다.
그는 "보통 땐 고속도로 정체가 길어도 10㎞ 정도인데 명절 땐 40㎞까지 된다"며 "차에서 답답해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교통정보를 전달하고 짜증스런 마음까지 풀어주는 게 교통 리포트의 몫"이다고 했다.
사고를 접할 땐 마음이 아프다.
"지난 추석 때였어요. 사고로 불길에 휩싸인 차량을 모니터로 보고는 너무 안타까워 탄성을 지를 뻔했어요. 명절 땐 온 가족이 움직이는 만큼 안전에 신경을 쏟아줬으면 좋겠어요."
◆현대공원 나기주 과장
"말끔하게 후손과 가족을 만나게 해드려야죠."
설이 바쁜 건 경북 칠곡군 지천면 현대공원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30여 명의 직원은 공원에 널브러진 낙엽을 쓸고 줍는 일부터 화장실 청소까지, 성묘객 맞을 준비로 바쁘다.
66만1천㎡의 부지에 묘지가 3만 기에 달하는 현대공원에서 현장업무를 맡고 있는 나기주(48) 과장은 명절 때면 평소에 하는 매장업무에다 벌초, 산불 순찰까지 일이 보태져 눈코 뜰 새가 없다.
설 연휴 내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 과장은 설 전날, 어머니가 있는 왜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는 했지만 오전 6시까지인 출근시간에 맞추려면 설 당일 차례는 지내지 못한다.
"벌써 10년째 차례도 못 지내고 공원으로 달려옵니다. 다행히 가족들이 제 일을 이해해주니 고맙죠."
몰려드는 성묘객을 맞다 보면 정작 자신은 아버지 묘소를 살피지 못할 때가 많다.
"아버지 묘도 여기에 있어요. 겨우 들러도 명절 땐 술 한 잔 올리지 못합니다. 아버지 산소를 지날 때면 마음속으로 '죄송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래도 힘들지만은 않다. 성묘객들이 "좋은 일 한다"며 격려를 해줄 땐 보람도 느낀다.
◆대구동물메디컬센터 임재현 원장
동물병원 의료진도 남들과 다른 설 연휴를 보낸다. 갑자기 아픈 동물을 치료하고, 또 고향길에 함께 갈 수 없어 맡겨놓은 동물들을 보살펴야 해 명절 가족모임은 늘 뒤로 미뤄야만 한다.
24시간 문을 여는 대구동물메디컬센터. 이곳의 임재현(43) 원장은 이번 설 연휴 내내 오전 9시에 출근, 오후 6시까지 병원에 머물기로 했다. 명절을 반납한 지 벌써 3년째다.
올해는 특히 가족들이 명절을 함께 보내자며 임 원장을 보챘지만 동물들 생각에 또 한 번 양해를 구했다.
대구에 동물병원이 10여 곳 있지만 설 당일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래서 이곳엔 평소보다 2배 이상 많은 동물이 몰린다. 맡겨둔 반려동물까지 보태면 제법 시끌벅적해진다.
대수롭지 않은 때도 있지만 긴급하게 수술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몇 해 전 명절을 쇠러 고향에 데려간 요크셔테리어가 옆집 개에 가슴을 물렸다며 보호자가 한달음에 안동에서 빗길을 뚫고 달려와 반려견을 살려달라고 울먹였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 그 개는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만약 병원 문을 열지 않았다면 위급한 상황을 맞을 뻔했다"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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