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란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고 걱정된다. 겸손이란 단어에 자신이 없는 필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겸손을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순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겸손이란 단어는 나를 낮추고 상대적으로 남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우리 미풍양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표로서 삶의 기준이 되고 있다. 주역에서는 인간 최고의 덕이 노겸이라고 하였다. 노겸이란 열심히 노력해서 공을 세웠지만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씩은 후회를 하곤 한다. 그때 왜 내가 조금만 더 겸손하지 않았을까라며 안타까워한다. 흔히 우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최고의 덕목 중 하나로 겸손을 얘기한다. 겸손은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먼저 자신을 희생시키며, 넓은 이해심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기에 무한한 아량의 그릇에 비유되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모두들 겸손하십니까?" 물어 보면 어떤 답이 나올까. 아마 묻는 자체가 무의미할지 모르겠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해야 하는 마음의 공간에는 질투와 시기심으로 가득 찬 현대인들이 다수를 점하다 보니 겸손의 선은 점점 희미한 빛이 되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질 위기에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밝힌 배우 황정민의 그 유명한 밥상 소감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도 이런 좋은 상이 오는군요. 사람들에게 일개 하찮은 배우라고 나를 소개합니다. 60여 명의 스태프가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해서.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죄송합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간략하지만 진솔하고 꾸밈없는 내용으로 관객들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바로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된 겸손의 섬김이 관중의 호응 속에 훈훈한 세상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G2 시대를 열었고 13억 인구를 이끌었던 지도자로 세계의 중심에 있었던 중국 후진타오 전 주석은 몰락한 집안, 차(茶)를 파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엔지니어를 꿈꾸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힘겨운 환경은 그를 빨리 성숙하게 만들었고, 특히 겸손의 미덕을 통해 혹독한 단련의 시간을 이겨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겸손의 미덕을 멀리하고 눈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만 집착하여 상대방을 모함하고 터무니없는 실언을 쫓다 보면 점점 주위에서 소멸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더욱 험난해질 것이며 인정이 메마른 기계적 문명 속에서 우리는 견뎌내야 한다. 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훈훈한 양심의 통로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 통로의 시작을 겸손의 미덕으로 꽉꽉 채웠으면 좋겠다.
안봉전 대구한의대학교 화장품약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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