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일제 총독을 오인, 찌르고 순국한 송학선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총독을 못 죽인 것이 저승에 가서도 한이 되겠다."

1926년 7월 '금호문(金虎門) 사건'으로 재판받던 송학선(宋學先'1897~1927)은 당당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1909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차별을 견디며 일본인 업체에 취직하는 등 집안 살림을 거들었다. 어릴 때 조선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 의사 사진을 보며 흠모했던 그는 이런 차별, 뒷날의 해고 등으로 더욱 반일 사상을 다졌다. 안 의사 같은 거사를 위해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 대상으로 삼았다. 총독 제거로 독립 의지를 널리 알리고 일제의 조선 억압에 대한 항쟁을 떨치려 했다.

총독 사진으로 얼굴을 익히고 처단 연습 등 치밀한 준비 뒤 1926년 4월 26일 순종황제 붕어로 빈소가 창경궁에 마련되자 총독 제거 계획을 짰다. 총독이 빈소 출입문인 창덕궁 서남문 즉 금호문에 나타날 것으로 보고 지켰다. 마침내 28일 조문 뒤 나오는 총독이 탄 것으로 생각되는 차량을 습격, 품 속 칼로 찌르고 피하다 격투 끝에 체포됐다. 그러나 찔린 사람은 총독을 닮은 일본인이었고 사망 2명, 부상 2명에도 총독 처단엔 실패했다. 재판에서 1927년 오늘 사형이 확정돼 5월 형장의 이슬로 서른 살의 삶을 마감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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