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명분이 무엇이든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방식은 다를지언정 구성원 개개인의 삶이 비옥해지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중략)공동체를 거창한 이념으로 생각할 것 없다. 그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프로그램의 하나일 뿐이다. 고통 받는 타인과 사회에 대한 구제는 그 다음 문제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타인을, 사회를 위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해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질문을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해답을 공유하면 명분이 아무리 위대하다 하더라도 희생과 손해를 요구하게 된다. 선생님이라는 자리가 희생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을 요구할 때 결국은 지치게 된다. 지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로 인해 선생님 개개인의 삶도 비옥해져야 한다.
여기서 비옥해진다는 의미는 물질적인 부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만을 원했다면 선생님들은 선생님이라는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방법을 질문이라는 것에서 찾았다. 선생님이라는 길이 지닌 근본적인 질문은 동일하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그로 인해 선생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대답은 다양했다. 그 다양한 대답을 먼저 인정했다. 다양한 대답은 다양한 방법을 창안했고, 그 방법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선생님들은 행복해했다.
행복은 엄청난 전파력을 보였다. 학부모들은 학부모 연수를 통해 아이들을 향한 선생님들의 마음이 행복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어떻게 해달라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렇게 할 것이라는 것, 나아가 그 방법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며, 당신들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것이 연수의 과정이었다. 학부모들도 처음에는 자식 교육을 위해, 또는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연수를 신청했지만 조금씩 공동체의 문화에 젖어들고 있었다. 특히 토론 어울마당이나 책쓰기 캠프 등을 통해 공동체의 행복을 체감하면서 열정은 더욱 깊어졌다. 곳곳에서 학부모들이 캠프나 어울마당을 자발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13, 14일 이틀간 안동 국립국학진흥원에서 학부모지원단 워크숍이 열렸다. 학부모들은 워크숍을 위해 자체적으로 독서토론을 준비했고, 저녁 모임을 위해 A학부모는 김장김치를, B학부모는 삼겹살을, C학부모는 음료수를, D학부모는 과일을 준비했다. 워크숍은 어떤 시간보다도 흥겨웠고,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웠다. 하지만 저녁 모임이 끝나자 쓰레기장처럼 어지럽던 워크숍 장소는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무언가를 준비하지 못한 학부모들이 정리를 맡은 것이었다.
최근에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궂은 일을 스스로 감당한다. 자신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한 선생님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그 선생님들은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그들도 공동체의 일원인 것이다.
우리 모임은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스스로의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논리적인 것도 아니다. 체계적인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에 그 행복을 함께 누리자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오히려 받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 그렇기에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다. 행복하게 오늘을 살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더욱 많이 만들어질 게다. 만든 프로그램은 또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그 행복을 나누게 될 것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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