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열 곳 없는 대구

춘절 몰려온 중국 관광객 "잠만 자고 가지요"

춘절 연휴(중국의 설'1월 31일~2월 6일)를 맞아 중화권 관광객들의 대구 러시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와 쇼핑업계는 정작 통 큰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포함한 중화권 관광객들은 한 번에 대량 구매하고, 고가의 물품들을 많이 구입하는 특징이 있어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들을 유치하는 데 경쟁적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춘절 연휴에 대구를 찾을 중화권 관광객은 1천962명에 이른다. 이는 패키지 상품으로 대구에 오는 경우로 개별여행객을 포함하면 실제 관광객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화권 관광객의 여행 코스는 동화사와 스파밸리, 이월드'83타워, 국립대구과학관, 대구스타디움, 동성로 등이다. 대부분이 볼거리'체험'숙박 위주여서 돈벌이가 변변치 않다. 더욱이 지역 백화점이나 아울렛 등 쇼핑업계는 중화권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나 이벤트가 거의 없다. 중화권 관광객들은 대구에서 '구경'만 하고 쇼핑은 서울이나 부산에서 하고 있다.

◆쇼핑은 시간 때우기?

3일 오후 4시 30분 대구 중구 동성로. 춘절을 맞아 대구를 찾은 가족 단위의 대만 관광객 15명이 자유 쇼핑에 나섰다. 하지만 상당수는 쉼터에 앉아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 사람들도 대부분 매장을 둘러보고 다시 모였다. 여행 일정에 쇼핑 시간을 잡았지만 대만인들은 그냥 구경하는 정도로 그쳤다.

투어 가이드를 맡은 이용호(33) 씨는 "투어 일정을 보면 부산에서는 롯데, 신세계 같은 백화점에서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쇼핑 시간이 들어가 있지만, 대구의 경우 쇼핑 시간이 따로 없는 편이다. 쇼핑 시간을 잡아도 물건을 별로 사지 않는다"고 했다.

왜 이럴까? 대구가 중화권 관광객에게 '쇼핑 관광지'라는 인식이 약한데다 백화점과 아울렛, 동성로 상가 등이 춘절 관련 이벤트나 중화권 관광객을 겨냥한 판촉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중화권 관광객 여행 코스에 잡혀 있는 동성로는 매년 환영 플래카드만 걸 뿐,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인이 자주 찾는다는 화장품 가게 직원 김윤정(27) 씨는 "간단한 용어만 중국어로 알아둘 뿐 나머지는 손짓, 발짓으로 손님을 응대한다"고 했다.

중화권 관광객들은 대구에서 쇼핑하는 데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대만인 왕아련(44) 씨는 "서울은 백화점뿐 아니라 명동에만 가도 중국어 간판이 많고 매장에서도 마치 중국에서 쇼핑하는 것처럼 말이 다 통해 쇼핑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며 "대구에는 중국어로 쓰인 간판이 거의 없고 중국어가 통하는 직원도 찾기 힘들다"고 했다.

◆지갑 열게 할 프로모션 필요

중화권 관광객은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큰손'으로 불린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중화권 관광객이 총 여행경비 중 쇼핑에 지출하는 비중은 61%에 이른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그만큼 과시형 소비 성향이 강하다.

실제로 대구그랜드면세점의 경우 관광특수 기간엔 평소의 5배 이상 많은 손님이 몰린다. 이 가운데 중화권 고객이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구그랜드면세점 관계자는 "중화권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날엔 물량이 동날 정도다"고 했다.

대구가 백화점이나 아울렛 등 쇼핑 인프라를 잘 갖춰 놓고도 이를 관광상품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가톨릭대 관광경영학과 현용호 교수는 "서울은 중화권 관광객들이 자국에서 쇼핑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느낄 만큼 다양한 서비스와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다"며 "대구시와 지역 쇼핑업계가 중화권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중국인 유학생을 활용하거나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그들의 흥미를 끌어내 입소문이 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중화권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