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 사람이 저뿐인데 남편에게 간 기증을 하고 누워 있으니 살아갈 걱정에 막막합니다."
강인주(가명'49'여) 씨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다고 했다.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남편 심정수(가명'50) 씨가 혹시라도 감염이 될까 하는 염려와 매일 늘어나는 병원비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남편에게 간을 절반 이상 이식해준 강 씨도 환자지만 무균실에 입원한 남편을 돌보느라 누워 있을 짬도 없다.
"간병인을 쓸 형편도 안 되니 내가 돌봐야죠.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아빠 대소변까지 받아내는 딸들을 보면 내가 빨리 회복해서 어서 돈을 벌어야 해요."
◆두 딸과 아내의 듬직했던 가장
젊은 시절 강 씨와 남편은 그림 같은 커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처음 만나 연인이 된 두 사람은 10년 가까운 연애 끝에 1992년 결혼했다. 남편은 학창시절 태권도 선수로 활약하고 의무경찰로 복무하면서 고위급 경호업무를 맡을 정도로 건장한 젊은이였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하객들은 모두 선남선녀라며 입을 모았다.
결혼 이듬해 큰딸 은경이가 태어났고 남편의 사업도 탄탄대로였다. 당시 주유소를 운영하던 남편 덕에 집안 살림은 넉넉했다. 둘째 은주가 태어나면서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주유소 사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주유소 문을 닫을 정도로 경제상황이 나빠졌다.
"1997년 이후에는 주유소를 유지하려고 여기저기 돈을 끌어다 썼어요. 그때부터 빚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상황이 나빠지자 남편은 이곳저곳 새로운 사업을 알아보고 다녔다. 주유소를 폐업한 뒤에는 경남 마산에서 인쇄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고, 다시 서울에서 기기설비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사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강 씨가 식당 주방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할 정도로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초등학생, 유치원생이던 어린 두 딸만 집을 지키고 있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간경화로 무너진 가장
2004년 부채만 떠안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남편은 다시 가족을 데리고 고향 대구로 돌아왔다. 작은 과일가게를 열고 장사를 시작했지만 남편은 자주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했다.
"하던 사업이 다 망하니 스트레스가 컸나 봐요. 화병이 났는지 가슴을 치면서 힘들어했죠."
하지만 항상 건강했던 남편이 무너질 줄은 누구도 몰랐다. 2006년 9월 가슴 통증으로 들른 병원에서 남편은 간경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약을 먹으면서 끝까지 버티던 남편은 2007년 식도정맥류가 파열되면서 결국 무너졌다. 응급수술을 받은 후 몸져누운 가장은 아내 강 씨와 두 딸의 수발을 받는 신세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간경화 판정 5년이 지나서는 간성혼수 증세까지 찾아왔다. 간성혼수는 간 기능 장애 환자에게 의식 상태나 행동 변화가 생기는 현상.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남편은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돼버렸다.
"마치 치매 같았어요. 멀쩡한 날은 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지만 정신이 없는 날에는 딸들 얼굴조차 못 알아봤죠. 아이들 눈에서 눈물이 나는 걸 보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무너진 심 씨 옆에서 강 씨와 두 딸은 듬직했던 가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를 한결같이 돌봤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강 씨는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점심시간까지 쪼개가며 남편을 간병했다. 한창 놀기를 좋아할 때인 아이들도 학교를 마치면 곧장 아빠 곁에만 붙어 있었다.
"아이들 덕분에 버티는 거예요. 또래 애들처럼 놀고 싶을 텐데 집에서 아빠 간병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 저런 착한 애들이 어디 있나 싶거든요."
◆간을 절반 이상 떼고도 남편을 돌보는 아내
남편 심 씨는 지난해 10월 1급 간 장애 판정까지 받았다. 간이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간 이식을 하면 좋아질 가능성이 있었지만 수천만원의 수술비용을 마련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돈 때문에 악화되는 걸 지켜만 보고 있는 심정이 어떻겠어요. 세상이 원망스럽죠."
지난해 12월에는 남편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병원에서 검사를 했더니 간 이식을 하지 않으면 2개월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강 씨는 눈앞이 하얘졌다. 돈을 구하려고 사방팔방으로 알아보고 다닌 끝에 겨우 2천만원을 만들었다.
기증자 문제도 있었다. 큰딸이 자신의 간을 아빠에게 떼어주겠다고 나섰다.
"살 날이 많은 자식이 간을 떼겠다는 걸 어느 부모가 찬성하겠어요. 저도 남편도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결국 강 씨가 기증자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남편에게 기증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달 20일 강 씨는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수술대에 누웠다. 간 이식을 받은 남편은 평생을 면역억제제를 먹으며 감기 등 작은 병에도 걸리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더 세심히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남편에게 간의 3분의 2를 떼어준 강 씨도 의사에게 1년 정도는 쉬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강 씨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남편을 돌봐야 하고, 어서 나아 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증을 해준 본인의 병원비와 남편의 치료비, 남편이 쓰는 기저귀 값을 벌어야 한다. 강 씨가 누워 있으면 집 안 생계는 점점 어려워진다.
강 씨는 "지금은 기초생활수급비와 큰 딸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버는 돈이 전부"라며 "얼른 일해서 여기저기 그러모은 수술비를 갚고 병원비도 내야 하는데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이 막막하다"고 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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