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낮 12시 50분쯤 안동병원 운항통제실로 '닥터 헬기'를 요청하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영주시 가흥동에 사는 최모(57) 씨는 갑작스런 가슴 통증 때문에 집 근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급성심근경색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닥터헬기 1천 회 주인공은 영주의 50대 환자
긴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내린 의료진들은 경북응급의료권역센터인 안동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안동병원 '닥터헬기'를 요청했다.
위급한 상황임을 파악한 안동병원 항공의료팀은 12분 만에 닥터헬기를 타고 30㎞를 날아왔다. 이들은 곧바로 환자 상태를 확인한 뒤 현장 응급처치와 함께 닥터헬기에 태워 이송하며, 병원 응급수술팀과 계속 연락을 취해 수술을 준비하도록 했다. 최 씨는 안동병원 도착 즉시 수술을 받았고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국립중앙의료원이 운영하는 닥터헬기가 운항 2년 4개월 만에 1천 회 출동 기록을 세웠다. 1천 회 출동의 도움을 받은 주인공이 바로 안동병원 닥터헬기를 이용한 영주의 최 씨였다.
전국적으로 닥터헬기는 경북 안동병원을 비롯해 인천 가천대학 길병원, 전남 목포한국병원, 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 4곳에 한 대씩 있다. 닥터헬기는 2011년 9월 23일 인천과 전남에서 첫 운항을 시작했으며, 지난해 7월부터 경북과 강원에 추가로 배치됐다.
◆중증외상, 심뇌혈관 질환 가장 많아
닥터헬기 1천 회 출동 가운데 기상악화에 따른 회항, 현장에서의 환자 사망, 보호자의 출동 요청 취소 등으로 74회 임무가 중단됐으나 926회에 걸쳐 930명의 응급환자가 이송됐다.
2013년 말 기준 닥터헬기 출동 건수는 877건에 이르며, 881명의 환자를 이송했다. 이들 중 중증외상 환자가 201명으로 23%를 차지하고 뇌질환 155명(17%), 심장질환 69명(8%) 순으로 나타났다. 호흡곤란'의식저하'쇼크'화상'심한 복통'소화기 출혈 등 기타 환자가 456명에 달했다.
지역 병원 의료진들이 닥터헬기를 요청한 경우가 877건 중 671건(76%)으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 소방서 및 해경의 요청이 132명(15%), 경찰 요청이 25명(3%) 등이었다.
닥터헬기는 가장 선진화한 의료 이송 체계로 불린다. 특히 분초를 다투는 중증 응급환자의 경우, 응급의학 전문의 현장 응급처치→빠른 출동과 이송→병원 도착 즉시 정밀검사 및 응급수술 개시 등을 통해 생명을 구하고 치료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1천 회 출동 중에서 출동 소요시간이 5~11분인 지역이 80%가량, 거리가 60㎞ 이내인 지역도 80% 정도로 나타나 산간 및 도서 지역으로의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동안 안동병원에 배치돼 경북지역 응급환자 이송에 나섰던 '경북 닥터헬기'는 모두 125회의 출동 기록을 세웠다. 호흡곤란'의식저하'쇼크'화상'심한 복통'소화기 출혈 등으로 생명이 위태로웠던 환자 120여 명의 건강을 지켰다.
안동병원 항공의료팀은 응급의학 전문의'응급구조사'응급코디네이트 등 의료팀과 조종사'관제사'운항통제사'정비사 등 운항팀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25명이다.
닥터헬기가 한 번 출동할 때마다 조종사'부조종사'응급의학 전문의'응급구조사 등 4명이 탑승하며, 병원으로 돌아올 때는 환자와 보호자까지 포함해 6명 정도가 탑승한다.
◆생명 위태롭던 산모와 아기도 구해
안동병원 항공의료팀 김연우 과장(응급의학과 전문의)은 "지난해 10월 영양 입암 119안전센터 요청으로 출동해 조기 출산한 다문화가정 산모 농티꾸엔(26) 씨와 36주 만에 태어난 신생아를 응급처치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했다.
당시 임신 36주인 임신부가 조기 진통으로 출산 징후가 보인다는 다급한 닥터헬기 출동 요청에 따라 김 과장은 곧바로 현장으로 날아갔다. 헬기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출산이 이루어진 상태였으나 산모의 하혈이 계속되고 신생아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태였다.
의료진들은 신생아에게 즉시 산소를 공급하고, 산모의 자궁 수축을 돕기 위한 마사지를 시행하면서 경북권역응급의료센터와 교신해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신생아실 의료진들의 대기를 요청했다. 병원 도착 즉시 산모는 분만실로 이동해 산후 처치를 받았고, 아기(남자 2.46㎏, 48㎝)는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모두 건강하게 퇴원했다.
여름 가족여행 도중에 발생했던 심근경색 환자의 신속한 응급처치도 화젯거리였다. 지난해 8월 동해안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던 김영숙(54'경북 경산시) 씨는 식은땀을 흘리며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119의 도움을 받아 울진군의료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의료진은 급성 심근경색 증상으로 판단하고 응급치료를 한 뒤 안동병원 항공의료팀에 닥터헬기를 요청했다.
안동병원 김권 과장(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항공의료팀은 23분이 걸리는 울진까지 날아가 환자를 넘겨받고 헬기 내에서 응급치료를 시행하며, 심장혈관조영술 준비를 요청했다. 병원 도착 직후 심장혈관센터 조현옥 과장이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했고, 환자는 치료 후 닷새 만에 퇴원했다.
◆하늘을 나는 앰뷸런스
하지만 안타까웠던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3일 의성 한 병원에서 진료 대기 중이던 환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심장 박동이 멎는 일이 벌어졌다.
병원 측은 즉시 닥터헬기 출동을 요청했고, 안동병원 항공의료팀은 헬기 내에서 긴급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미 한 걸음 늦은 상태였다.
안동병원 항공의료팀 김병철 팀장(응급의학과 전문의)은 "닥터헬기에는 의사가 탑승하고 각종 응급의료장비(초음파기, 심장제세동기, 인공호흡기, 혈액분석기 등) 및 전문 처치 약물 등이 기본적으로 탑재돼 있다"며 "하늘을 나는 119 구급차량을 떠올리면 기능을 이해하기 쉬우며, 무엇보다 빠른 출동과 현장 처치, 병원과의 연계가 닥터헬기의 최대 장점"이라고 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올해 닥터헬기 사업 운영에 대한 종합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닥터헬기의 추가 도입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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