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長男(장남)

설 연휴가 지난 지 사흘째. 집집마다 명절증후군의 여파로 아직은 몸과 마음의 피로가 조금씩은 남아있을 즈음이다. 특히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통적인 관습에 보다 충실해야 하는 40대 이상 장남의 가정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지난날 이 땅의 장남이란 부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기대와 역할에 부응해야 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여러모로 최우선적 배려와 혜택을 누렸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도 뒤따랐다. 그래서 장남은 부모에게 가장 헌신적인 '효'(孝)를 실천하는 집안의 '공인'이기도 했다.

문제는 급속하게 변한 현실과 과거의 범주를 맴돌고 있는 인식의 간극이다. 장남의 의무는 여전히 관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실제 권한은 법률적 평등주의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부 이외의 요인이 수시로 개입하는 장남의 가정은 결혼 초기부터 긴장과 갈등이 상존하는 시공간이다.

어쩌면 장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집안의 형편과 부모의 처분에 따라서는 저마다 할 말이 많다. 어떤 집은 장남이라는 명목으로 역할에 비해 과분한 권리를 주장해 아우나 누이들의 불만이 쌓이고, 어떤 집은 장남의 과중한 부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배려가 분란의 요인이 된다. 노부모를 봉양하는 일이나, 재산 상속 문제로 불협화음이라도 생기는 명절이라면 그 후유증이 더 심각해지기 마련이다.

10년 전 어느 방송인이 펴낸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란 책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저자 스스로 장남으로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파란과 애환을 진솔하게 고백한 것이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 선 이 시대의 장남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격동의 현대사회를 살아온 이들에게 '장남'이라는 이름은 굴레이자 고뇌이기도 했다. 그러니 여하한 고군분투에도 장남은 부모에게는 불효자가, 아내에는 못난 남편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정작 오늘 우리 사회에는 '장남 정신'이 절실하다니 이 무슨 역설인가. '장남' 책을 펴낸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의 보다 강건한 내일을 위해서는 뒤로 숨어 구시렁거리는 덜 여문 '아우 의식'에서 벗어나, 책임감 있고 포용력 있는 '장남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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