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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주소 '부촌 프리미엄' 흔드나

도로명 위주의 새 주소 체계가 도입되면서 범어동 등 부촌 개념이 희석되고 있다.사진은 범어동 일원 매일신문 DB
도로명 위주의 새 주소 체계가 도입되면서 범어동 등 부촌 개념이 희석되고 있다.사진은 범어동 일원 매일신문 DB

"범어동, 만촌동 대신 도로명을 딴 특색 없는 새 주소를 써야 한다는데 불만이 많습니다. '부촌' 프리미엄이 사라질까 염려하는 분위기입니다."(대구 수성구 만촌동 A공인중개사무소)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게 되면서 부동산 시장에 작은 파장이 일고 있다. 바뀐 주소체계가 향후 집값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역별로 희비가 갈리고 있다.

특히 대구의 경우 판상형(바둑판식) 도로 체계를 갖고 있는 탓에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부촌 프리미엄 사라지나

새 주소 체계에서는 여러 동이 같은 도로명 주소를 쓴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집값에 일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 황금동, 범어동 등 부촌으로 인식되는 곳의 동 명칭이 사라지면서 부촌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아파트값이 제일 비싼 두산위브더제니스가 있는 범어동은 '달구벌로 00'으로, 황금동 롯데화성캐슬골드파크 대단지는 '청수로 00'으로 변경됐다.

대구의 대동맥인 달구벌대로의 경우 수성구, 중구, 남구, 서구, 달서구 등 대구 전역에 걸쳐 있어 주요 대 단지 아파트들의 명성(?)을 희석시키는 촉매로 작용한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구경북 부동산분석학회 김경한 회장(대구과학대 교수)은 "대구는 달구벌대로, 동대구로 두 축을 따라 주요 아파트단지가 접해 있다"면서 "부동산은 입지적 차별성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도로를 따라 주소가 나열된다면 이 부분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어동 두산위브더제니스와 황금동 롯데캐슬 등은 아파트 입지 만큼이나 이름값을 톡톡히 보고 있는 단지다. 범어동 한 주민은 "집을 살 때 '범어동'이라는 이름을 포기할 수 없어 웃돈까지 주고 이사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파트단지 이름에서 범어동, 만촌동을 붙인 명칭은 거의 사라졌다. 범어동은 '범어천로 00', '동대구로 00', '달구벌대로 00', '범어2길 등으로 이름이 바뀐다.

만촌동 역시 '청수로' 등으로 불리게 됐다. 권오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이사는 "동 이름이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다"며 "새 도로명주소가 보편화되면 장기적으로 이 같은 장점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불편

공인중개사들의 불만도 많다. 매매'임대차 계약 시 해당 건물주소는 기존 지번 주소로 표시하지만 계약자의 주소는 도로명 주소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새 주소 체계상 물건 소재지는 지번주소를 쓰고 계약을 체결하는 매수'매도자나 임대'임차인, 중개업자 주소는 도로명주소를 사용해야 한다. 토지 등 도로가 없거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부동산 거래 등을 위해선 부동산 소재지는 모두 등기부등본상의 지번주소를 사용하도록 하고 거래'중개인의 인적사항은 도로명주소를 사용토록 했다.

부동산을 둘러싼 법적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주소를 잘못 쓸 경우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거래가 무효화되는 등의 상황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남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박미영 공인중개사는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보내오는 경우 대부분 옛 주소로 보내 주기 때문에 중개인이 일일이 확인해서 새 주소로 작성하고 있다"면서도 "주소를 잘못 기재하면 손해배상의 문제도 공인중개사들이 떠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도로명 주소

기존 지번을 대신해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건물에 번호를 붙여 표기하는 새 주소를 의미한다. 그간 이용했던 지번 주소와 시'군'구, 읍'면 등은 같지만 동리와 지번 대신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활용한다. 옛 주소의 지번은 '번지'라고 읽지만 도로명 주소의 건물번호는 '번'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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