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1시 30분쯤 대구 동구 안심로 한 영구임대아파트. 이 집에 사는 배모(43) 씨가 안방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숨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이날 세상과 작별했다. 혼자서 맞은 쓸쓸한 죽음이었다.
배 씨의 식은 몸을 발견한 건 요양보호사 서모(45'여) 씨였다. 1주일에 2번씩 방문해 돌보는 서 씨가 없었다면 배 씨의 주검은 오랫동안 방치될 뻔했다.
배 씨는 27세이던 1998년 중풍이 와 갑자기 쓰러진 이후 말은 어눌해졌다. 걷는 것도 불편했다. 증세는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해 2006년 6월에는 뇌병변 2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고혈압도 그를 괴롭혔다. 병원에선 치료를 권유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챙기지 않았다. 치료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런 그를 가장 걱정했던 건 어머니였다. 힘겹게 자궁암 투병을 하던 어머니는 아들 걱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집안을 도와주러 온 동네주민에게 종종 "나 죽는 것은 하나도 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아들을 혼자 두고 간다는 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며 아들 걱정을 늘어놓았다. 배 씨의 어머니는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2009년 6월 61세에 두 눈을 감았다. 그 후 4년 6개월 동안 배 씨에게 남은 건 아픈 몸과 외로움, 매월 지급되는 복지급여 67만원이 전부였다.
동네주민들은 그를 덩치 크고 무뚝뚝하지만 순박한 면이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휴대전화를 목에 걸고 다녔던 그는 장애 탓에 사람들과 대화를 잘 못했지만 말을 건네면 더듬더듬 대꾸를 했다. 정모(60'여) 씨는 "지나가는 말로 햇빛 좀 자주 보고 다니라고 말을 걸면 허연 얼굴로 웃으며 '네'라고 했다"고 전했다.
동네 부녀회는 주기적으로 배 씨의 집에 가서 설거지하고 청소했다. 급식 도시락과 밑반찬을 전하기도 했다. 배 씨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마음이 아프다. 아직도 생전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젊은 나이에 황망하게 떠난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배 씨는 죽어서야 3년 넘게 연락이 끊긴 누나(45)를 만날 수 있었다. 경남 양산에 사는 누나는 경찰 조사에서 배 씨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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