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나라만들기의 과제를 단계적으로 합리적으로 성취해 가는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완전하게 실천할 수는 없었다. 그를 위한 기초적 조건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역사가들은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고 해서 초창기의 정치 지도자들을 너무 심하게 매도해 왔다. 심지어 초창기의 대한민국을 두고 이것이 과연 나라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애당초 생겨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제사학자로 잘 알려진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62)가 지난 해 출간한 '대한민국 역사: 나라 만들기 발자취 1945~1987'(기파랑)의 첫 대목이다. 이 교수는 해방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할 때 그것을 어떤 무엇으로도 통합할 수 없으며 ,그 점에서 분단은 불가피했으며 좌우합작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유 이념에 입각,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에서 현대사를 새롭게 서술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문명사의 대전환 과정에서 내외 공산주의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고 자유 이념에 입각한 새로운 나라를 세운 역사이며 정부 형태와 개발전략을 둘러싼 분열과 갈등을 차례로 해소하면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중진경제와 민주주의를 성취한 역사"라고 규정하고 "국가의 성공과 실패는 이념의 성공과 실패로 대한민국은 건국의 선각자들이 국가이념에서 올바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반면교사(反面敎師)가 공산주의 이념으로 향한 북한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역사'로 전경련이 주관하는 시장경제대상을 받았다
"수상여부를 떠나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긍정하는 마음에서, 자유민주주의적 기조에 입각해서 대한민국의 60년 역사를 정리한 책이 의외로 없었다. 강만길 교수의 한국현대사나 서중석 교수 등의 시중에 잘 알려진 역사책은 대한민국이 출생부터 뭔가 잘못됐다, 지금부터 잘해나가자는 식이다. 4.19를 기점으로 그제서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심지어 교과서도 그런 식으로 편찬해왔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민족분단을 초래했고 건국세력이 없었다면 통일국가가 성립했을텐데 이승만 대통령과 한민당의 김성수 세력들이 민족통일을 방해했다고 인식하고 그런 식의 역사교육을 해왔다. 저는 그런 시각이 잘못됐다고 본다."
-이전에도 그런 식의 역사 교육을 하지 않았나.
"2003년 7차 교육과정부터 노골적으로 그런 역사서술이 교과서에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그 때부터 역사논쟁이 시작됐다. '역사를 정치화하지말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정치화를 먼저 한 쪽은 그쪽이다. 소위 '좌파민족주의 역사학'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서자취급해왔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이었다. 18,19세기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성리학의 나라가 해체되고 한 후, 일제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억압과 차별을 무릅쓰고 민족독립을 위한 근대문명의 실력을 양성한 세력들이 국내에서 형성됐고. 해외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독립운동을 한 세력이 있었다. 이 두 세력이 해방후 합작해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나라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소련군의 지지를 받는 잘 조직된 공산주의 세력이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이 대결할 때 통합할 방법은 없다.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환상이다. 현실적으로 중도가 존재해 본적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 좌와 우가 성립할 수 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공존 틀을 만든다는 것은 환상이다."
-정부 수립은 우리가 먼저했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먼저 공산체제를 구축했다.
"고급 정치기술 훈련을 받은 소련 정치국 장교들이 북한을 직접 통치하지 않으면서 소련군대는 뒤에 있으면서 '인민위원회'로 하여금 사실상 북한을 통치하게 했다. 그들이 1946년 3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하는데 그것은 우리는 공산주의로 간다는 선언이었다. 타협할 수 없는 루비콘강을 그쪽에서 먼저 건넜다. 그것이 분단의 출발이다.
분단의 씨앗은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토지개혁을 실시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사회를 뒤엎어 버렸다. 같은 시기에 남한에는 통일된 정치세력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분단의 실질적인 책임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토지개혁이었다. 우리는 공산주의에 대항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웠는데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정당한 선택이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선생 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공정하지 못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에 큰 공적을 남겼다. 임시정부가 해체되는 마당에 그 간판을 끝까지 붙들고 살려 대한민국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는데 기여했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 단체의 하나였지만 그것이 있음으로써 3.1운동과 그 성과인 임정,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역사적 정통성의 흐름에 중대한 공헌을 남겼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에 끝까지 반대하고 건국세력을 '일신의 안위를 취하는 자들'이라고 매정하게 비판했다.
대한민국이 김구선생을 추앙하면서도 그러한 환상적인 민족노선으로부터 굳건하게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방어하고 건국에 절대적인 공로를 남긴 분(이승만)을 폄하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 점이 바로 잡혀 있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역사의식이 혼란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나라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조선왕조가 1392년 개국했지만 '경국대전'을 만든 것은 1460년이다. 무려 7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불교국가에서 유교국가로 전환시키는데 그만한 세월이 필요했다면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철학의 전통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건국의) 마스터플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민의 2/3는 농촌주민인데다, 국민의 절반은 문맹인 상태에서 농촌은 가부장적인 친족질서가 지배했다. 서구적 의미의 시민사회는 성립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초창기 정치인들은 무엇인가 자기 나름의 계몽적 역할이 있다고 믿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중심제와 미국과의 동맹, 철저한 반공주의, 그것에 기초한 북진통일 이런 몇가지로 지금까지도 한국인을 통합시키는 국가정체성을 정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대일(對日)강경노선도 이 대통령 유산이다. 이 모든 것을 수행할 강력한 리더십의 대통령 중심제를 통해 국민육성적인 교육혁명을 일으키고, 전쟁이 끝난 후 불과 6년 만에 경제를 복구시켰다. 그러한 경제적 복구의 성과가 없었다면 1960년대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했다. 그 업적 위에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이 있었고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해서 40여년 만에 민주주의를 쟁취하게 되는데 긴 역사에서 보면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단계적으로 성취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국가를 그럴듯하게 성립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환상이다. 그 유산속에서 잔뜩 누리고 살고 있으면서 이런 나라와 이런 정치체제, 이런 경제적 성과를 누가 이룬 것이지 눈을 감는 것은 자기위선적이다."
-교과서를 통한 역사논쟁이 왜 빚어진 것인가.
"1987년 민주화시대 이후 소위 '좌파 민족주의'에 의한 분단체제의 역사학이 성립했다. 한국현대사는 분단체제의 역사다. 이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국민국가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역사학이 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했다. 이어 1997년에 제 7차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쪽 사람들이 교육부를 장악해서 교과서 편수과정에 개입, 근현대사를 따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삼 정부 말에 그런 방침이 결정돼서 분단체제의 역사로서 근현대사를 편찬, 2003년부터 교과서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민족은 이념적 대립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것을 진작 깨달았던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다. 그런 환상에 빠져서는 안된다. (남북이)서로 마음을 터놓고 가슴을 열면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민족공동체 의식은 환상이다. 일제하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소멸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이 발견한 정치적 공동체 의식이 민족이다. 그러나 국가의 본질은 이념이다. 그런 환상에 사로잡힌 역사학자들이 민족통일공동체 구현을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역사학을 도구화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정치적인 역사교육이 시작됐다."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섞어서 통일할 방법은 없다. 민족주의적 명분이 고상하고 강력해보여도 그것은 환상이다. 환상을 추구하면 비극이 생긴다.
최근 우리 정부가 10여년 동안 추구해 온 통일정책도 다분히 관념적이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이념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북한이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자기들이 받아들이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있겠느냐. 중국이나 대만사람은 국제회의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전혀 없다. 마치 이웃사람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면 통일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통일돼 있고 왔다갔다 하고 서로 자존심 체제가 다른 정치적 자존심은 버티고 있지만 경제나 학문 사상은 동화가 되어있다. 북한은 공산주의의 변종으로 왕조세습적 공산주의다. 사유재산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이 중국만큼만 변해주면 통일은 저절로 된다.협동농장을 해체하고 농민들에게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개별경영을 인정하면 그것이 시장경제의 첫걸음이다. 그 개혁을 하지 않는 이상 북한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 북한이 덩샤오핑같은 개혁만 하면 평화통일이 된다. 그 방법밖에 없다. 통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장강(長江)이 흐르듯이 큰 흐름을 보면서 역사를 기다려야 한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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