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지명은 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거기가 어디지' 궁금해하면서도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라면 막상 지도를 펼쳐보는 일은 드물다. 내 발걸음이 닿지 않는 이런 지명과의 인식 단절은 때로 엉뚱한 말을 만들어내고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그대로 굳어진다. 이런 말의 유전(流轉)의 대표적인 예가 '산수갑산' '벽창호' 같은 지명이나 지명에서 유래된 명사다.
지금은 많이 바로잡혔지만 산수갑산은 함경남도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의 착오다. 벽창호도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의 거칠고 억센 소를 뜻하는 벽창우(碧昌牛)가 와전돼 앞뒤 꽉 막힌 고지식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낯선 땅이니 조금 잘못 쓴다고해서 탓할 일은 아니지만 잘못된 쓰임새는 혼란을 부른다는 점에서 바로잡는 게 옳다.
함경남도(북한 행정구역상 양강도)에 있는 삼수와 갑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다. 개마고원의 북쪽에 위치한 평균고도 1,400m에 이르는 고원지대로 해발 2,000m 아래위의 고산준령이 즐비하다. 삼수는 서쪽으로 장진강, 동쪽에 허천강, 북쪽의 압록강 상류 등 세 물길이 있어 삼수다. 백조봉(1,755m)을 중심으로 서북쪽의 삼수와 동북쪽의 혜산시, 남쪽의 갑산이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다. 국내에 이에 비할만한 험한 오지가 없으니 조선시대부터 삼수갑산은 중죄인의 귀양지나 유배지인 적소(謫所)의 대명사였다.
소월의 시에도 '삼수갑산'이 등장한다.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오고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이라 아하하/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삼수갑산 멀드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신인문학'1934년)
오는 20일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대구의 한 실향민이 74년간 간직해온 갑산 쌀을 공개했다. 1940년 고향 갑산에서 아버지가 수확해 영덕에 시집오는 누이 손에 쥐여준 쌀로 아버지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한줌의 쌀 중 절반은 부모님 무덤에, 반은 통일 되면 직접 뿌리겠다는 소원도 밝혔다. 일제에 나라 잃고 고향을 등진 한(恨)이 소월의 시에 녹아 있듯 70년 넘게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실향민의 안타까움이 마를대로 마른 갑산의 묵은 쌀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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