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이육사처럼

올해는 이육사 시인이 돌아가신 지 꼭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지난 1월 16일 안동시 도산면 원촌동 생가 마을에 자리한 이육사문학관에서 70주기를 기리는 추도회가 있었다. 육사는 1904년 4월 4일 이곳에서 태어나 1944년 1월 16일 만 40세의 나이로 중국 베이징 주재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그러니 올해는 육사의 탄신 110주년이기도 하다. 이육사문학관 또한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4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게 된다. 이래저래 올해는 육사와 연관이 깊은 해인 셈이다.

필자가 추도회에 참석해보니 장내를 가득 메운 많은 분들이 70년 전 우리 곁을 떠난 님을 매우 숙연한 자세로 추모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떠난 육사를 이토록 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학생 이상이라면 육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청포도' '광야' '절정' 등의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도회의 열기는 그가 이처럼 유명한 시인이기 때문일까?

육사의 40년 평생은 말 그대로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으로 일관한 삶이다. 그는 일제에 의해 모두 17차례 투옥되었고 죽음도 차디찬 이국(異國)의 옥중에서 맞았다. 본명 '원록'(源祿) 대신 '육사'(陸史)를 필명으로 삼은 것도 1차 투옥 때의 수인 번호였던 '264'에서 음을 딴 것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설에는 '육'(陸)이 중국 자전에 '찢을 육'(戮)과 의미가 통하는 점에 착안하여 일제강점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갈가리 찢어버리겠다는 뜻에서 '육사'라 하였다고도 하니, 조국의 독립을 향한 선생의 강고한 뜻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주옥같은 시작(詩作) 활동 또한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고 스스로 술회한 바 있다.

그런데 일제에 대한 저항의 의지가 이처럼 강하다 보니 선생에 대한 이미지가 이른바 '투사'(鬪士)로만 각인되는 듯하여 아쉬움이 든다. 선생은 분명히 "백마 타고 오는 초인"('광야')을 목놓아 부른 저항의 시인이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북방으로까지 휩쓸려 가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절정') 위에 기꺼이 섰던 지조의 시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육사의 이런 투사적인 기질의 바탕을 이루는 따뜻한 인간애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육사는 평생 늘 무거운 짐을 자각하며 살았으니, 언제 어디서나 사람다움의 도리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퇴계 선생 14대손이기도 한 육사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사람다움의 도리를 배우며 자랐다. 평생을 자기를 낮추고 타인을 배려했던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 빛을 잃지 않고 가학(家學)으로 이어져 온 결과이다. 육사는 여섯 형제 가운데 둘째였는데, 형제들 간의 우애가 남달랐다. 첫 번째 투옥의 계기가 된 대구지점 폭탄투척 사건 때 형과 바로 아래 동생이 함께 투옥되었는데, 서로 자기가 주모자고 다른 형제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 형님이 먼저 돌아가시자 조카들과 함께 남겨진 형수를 동생들과 극진히 보살폈다. 부모에 대한 효성도 각별하였는데, 마지막으로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된 후 거기서 순국하게 된 것도 모친의 소상(小喪)을 치르러 귀국한 것이 직접적인 빌미였다.

지금 육사의 고향 마을에 세워진 문학관에는 3세 때 선생을 여읜 외동딸 이옥비(李沃非) 여사(73세)가 방문객을 맞고 있다. 여사의 이름이 '옥비'(沃非)인 이유는 나라를 잃고 모두가 궁핍한 시대에 일신의 평안을 바라며 혼자만의 기름진 삶을 살지 말라는 뜻에서 선생이 지어준 것이라 한다. 가히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옥비 여사가 방문객들에게 단골로 들려주는 소회가 있다. 너무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평생을 그리워하였는데, 지금은 아버지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문학관을 무시로 찾아와 아버지를 본 듯 자신을 대하는 것을 보면서 뒤늦게 아버지의 사랑을 흠뻑 느낀다는 것이다. 이 시대 우리들은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까?

결코 길지 않았던, 그러나 분명한 울림이 있었던 육사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귀감이 되는 사례이다.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함께 올해부터라도 '육사처럼' 살아가는 첫걸음을 내딛기를 기원해 본다.

김병일/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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