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야 모두 말로만 개혁, 선거 앞두고 '약속' 남발

민주당이 3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과 출판기념회 회계 투명화 등을 담은 정치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야가 한목소리로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정치권의 혁신안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잖다. 민주당 혁신안은 '당내 의견 수렴절차가 없었다'는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렵사리 추진됐고, 반복되는 혁신안을 접한 일부 의원들 사이에선 "기존에 국민에게 했던 약속부터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성도 나온다.

◆선거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쇄신안

여야의 쇄신안 발표 경쟁은 선거를 앞두고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는 모양새다. 19대 국회 들어 여야가 내놓은 '특권 내려놓기' 안은 '의원 세비 30% 삭감' '불체포'면책 특권 내려놓기' '국회의원 겸직 금지' '국회의원 연금제도 개선' '국민참여 경선 도입'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이 가운데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당론으로 먼저 확정한 민주당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위헌 가능성을 거론하며 공천 개혁을 주장하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표류 중이다. 정개특위는 지난달 선거 관련 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지만, 지방의원 수를 늘리기로 해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의원 세비 30% 삭감' 안도 마찬가지다. 19대 총선 직후인 2012년 6월 8일 새누리당은 국회의원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내놨다. 곧이어 같은 해 대선을 앞둔 12월 3일 민주당 의원 전원은 '의원 세비 30% 삭감안'에 서명했다. 사흘 뒤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함께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없던 일이 됐다.

국회의원의 '불체포'면책특권 폐지' 공약도 비슷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시절인 지난 2004년 총선 때 이를 내세웠던 양당은 2012년 총선'대선 때 다시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애초 개헌이 필요한 사항임에도 공약으로 내세우더니 지금은 "개헌이 필요하다"며 발을 빼고 있다.

'쇄신안 내놓기' 경쟁은 지방선거를 앞둔 올 초에도 이어졌다. 이번 민주당 혁신안에 포함된 출판기념회 투명화나 국회의원 외국 출장 심사 기준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강조한 바 있다. 황 대표는 회견에서 "출판기념회로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해외 출장에 대한 윤리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국민참여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은 2007년 열린우리당이 공동 추진을 제안했을 때 거부했던 당시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에 슬쩍 끼워넣고서 황 대표가 올 초 다시 제안했다.

◆쇄신안 경쟁 말고, 쇄신 경쟁을

여야가 앞다투어 내려놓겠다던 기득권이 포기 경쟁을 거치는 동안 '알맹이'는 더욱 단단해지고, '쭉정이'만 버려졌다는 말도 나온다. 국회 폭력 처벌 금지같이 포기하기 쉬운 특권은 쉽게 내려놨지만, 겸직 금지, 의원연금 폐지는 일부만 지켜지고 있었다.

의원 겸직 금지는 14일부터 시행 예정인 개정 국회법에 반영됐다. 개정 국회법은 의원 겸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공익목적 명예직'은 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법 시행을 앞두고 '공익 목적 명예직'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데 있다. 국회 감사관실이 여야 지도부에 전달한 '공익 목적 명예직'의 내부 기준에 따르면 영리 목적이 아니고 비상임'무보수이면 의원들이 겸직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의원 연금 제도도 같은 사정이다. 처음에는 완전히 폐지할 것처럼 약속했지만 결국 ▷국회의원 재임 기간 1년 미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뒤 사면복권되지 않았을 때 등에 한해 연금을 받을 수 없게 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제안한 '국회의원 특권방지법'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익숙한 문구가 많다. 임기 중의 국회의원에 대해 유권자가 투표해 파면시키는 '국민소환제'는 10개월쯤 전인 지난해 4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에서도 내놨던 안이다.

'의원 세비 30% 삭감'도 '안'에 그쳤다. 대선이 끝난 뒤 여야는 한 푼도 깎지 않고 2012년 세비와 똑같은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삭감은커녕 18대 국회(1억1천400만원)보다 오히려 20% 늘어난 액수(1억3천796만원)였다.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특혜성 지원 예산은 이뿐이 아니다. 상임위별로 해외 출장을 가면 숙박비(1인당 최대 389달러)'교통비'식사비(1인당 최대 160달러) 외에 하루 50달러 정도의 '일비'도 주어진다. 이외에 관광 일정과 관련된 경비는 해외 공관이나 현지 한국 기업에서 부담하는 게 관례다.

'개점휴업' 특위도 말썽이다. 첫 회의 이후 한 차례도 열지 않은 민간인 불법사찰 국조특위에 3천여만원의 예산이 책정됐고, 18명의 위원은 평균 170만원 정도를 챙겼다. 그럼에도 다선 의원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만들어진 특위는 우후죽순이다. 한 지역 초선 의원은 "일도 안 하는 특위를 만들어 예산만 축내는 꼴"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지켜지지도 않는 정치쇄신안 탓에 국민들의 피로감만 쌓인다"며 "선거 같은 계기조차 없으면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