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게스트하우스, 대구를 이야기하다…'이유' 있는 게스트하우스들

여행 후의 휴식 사람들의 정은 덤

여행을 꼭 낯선 곳으로 떠날 필요는 없다. 주변을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면 보이지 않았던 여행지가 눈에 들어온다. 초등학교 옆 골목에 있는 한옥집과 주차장 앞 5층 주택을 그냥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는가. 그곳이 어쩌면 당신을 여행자로 만들어줄 '게스트하우스'였는지 모른다. 모텔만 즐비했던 대구에 어떤 곳은 새터민을 돕기 위해, 어떤 곳은 한국의 '속살'을 드러내기 위해, 각기 다른 목적을 담은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둘씩 문을 열었다. 이유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함께 떠나보자.

◆새터민 돕는 '착한' 게스트하우스

대구 중구 중앙대로(구 종로2가) 골목에는 빨간 벽돌 5층 건물 하나가 서 있다. 1층에 빼곡하게 들어찬 책을 보고 가정집을 개조한 평범한 '북카페'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건물 밖 '공감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힌 노란색 플래카드가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겉모습은 평범해도 안에서는 다양한 일이 일어난다. 지난달 어느 금요일 저녁, 이곳에서 작은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날의 초대 손님은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를 쓴 이현석 작가. 그는 '여행, 인식의 벽을 넘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 작가는 말과 자전거, 기차와 비행기를 언급하며 "인간에게는 어디론가 계속 떠나려는 본성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게스트하우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인 여행에 책까지 더해진 완벽한 조합이다.

공감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연 것은 지난해 6월. 새터민의 초기 정착을 돕는 사회적기업인 '공감'이 새터민 사업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 대구하나센터 허영철 소장은 "새터민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려가려면 기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정 여행사'를 차리려고 했다. 하지만 여행사를 차리려면 1억원이 넘는 자본금이 필요해서 새로운 방법 찾다가 게스트하우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설명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선한 취지에 공감한 의사 부부의 도움으로 생겨났다. 공감의 김성아 이사와 이종우 자문위원이 건물을 구입해 5년간 게스트하우스를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여행자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맞춰 1만5천~2만5천원의 싼 요금을 받는 게스트하우스가 대구 중심지에 꿋꿋이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다. 허 소장은 "만약 매달 임대료를 내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라며 "숙박료의 20%는 새터민 사업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 곳곳에는 '착한 사람들'의 손길이 스며 있다. 1층 북카페에는 대구시와 주한미대사관, 일반 시민들이 기증한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책마다 새겨진 영문 이니셜에는 도서 기증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 소회의실로 사용되는 2층에는 수시로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컴퓨터와 영어 등을 새터민 학생들에게 가르쳐준다. 북카페를 자주 찾는다는 대구평화방송 우세진 DJ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곳에 들러 책을 읽는다. 대구 시내에 이런 곳이 있는지 잘 모르는 시민들도 많던데 많은 분이 알고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감의 새 목표는 NGO(비영리단체) 여행사를 만드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북한 마을을 돌아보는 여행 프로그램도 선보일 예정이다. 허 소장은 "북한뿐 아니라 캄보디아 등 국가로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는 공정 여행을 구상 중이다. 앞으로 통일부와 협의해 1층 북카페에서 북한 영화 상영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적산가옥과 한옥의 만남

지난해 8월 문을 연 '판'은 버려진 한옥과 적산가옥을 가꿔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으로 변신시킨 경우다. 대구 종로초등학교 옆 골목길로 들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이곳은 '무늬만 한옥'이 아니다. 나무를 넣어 군불을 지피는 구들방도 있다. 판 게스트하우스 손미숙(53'여) 사장은 "명색의 한옥인데 직접 나무를 때는 온돌방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방 하나를 남겨뒀다"며 구들방 뒤편 부엌문을 열어 보였다.

손 사장에게 게스트하우스는 '모험'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7년, 말레이시아에서 3년간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한국스러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자녀들을 다 키운 지금 마음먹었을 때 하지 않으면 평생 못할 것 같아서 저질러버렸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해보니 '살림의 연장'이네요. 다른 나라 게스트하우스를 가보면 현지인이 사는 집에 그냥 손님을 받아요. 일본 '료칸'도 마찬가지고요. 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적산가옥은 레스토랑으로 개조했다. 적산가옥을 그대로 살려 천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곳은 1920년 야마모토 도예점 창고로 사용됐던 곳으로, 공사 당시 건물 주변을 파헤쳤을 때 도자기 파편이 많이 발견됐다. 손 사장은 "일반 건축물보다 역사가 서린 적산가옥에 더 마음이 갔다. 그래서 레스토랑 천장은 손을 거의 안댔다. 도미토리도 적산가옥이라서 천장이 높다"고 설명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8시에는 이곳에서 재즈 콘서트가 열린다. 대구뿐 아니라 서울 재즈 밴드를 초대해 공연이 더 풍성하다. 입장료는 단돈 5천원으로 밴드비를 주기도 모자라지만 손 사장은 음악이 흐르는 게스트하우스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판의 목표는 '아침상을 차리는 한옥집'이 되는 것이다. 손 사장은 "손님이 많아지면 '아침상'을 한 상 차려서 방 안까지 넣어줄 것"이라며 "잠자리뿐 아니라 음식도 문화의 일부다. 일본 료칸처럼 한국 문화를 파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도심 속 한옥의 멋, 구암서원

구암서원으로 가는 길은 좁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차는 골목을 끝까지 따라가면 고즈넉한 한옥과 마주하게 된다. 구암서원은 조선 전기 문신인 서침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1665년에 세워졌다. 하지만 서원이 1996년 북구로 이전하면서 16년간 방치됐다가 전통한옥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각 한옥채 이름에는 아기자기한 멋이 서려 있다. 오랫동안 건강해지는 '수강당', 사랑이 깊어지는 '애신당', 오래 복을 받는 '복연당' 등 방 이름 하나에도 전통적인 의미를 넣었다.

경주와 안동, 유서깊은 양반 도시들 옆에서 구암서원은 여행자들을 대구로 끌어모으고 있다. 사단법인 대구문화유산에 따르면 지난해 구암서원 숙박객은 총 755명으로 '도심 속 한옥'이라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운 결과다. 대구문화유산 허동정 대표는 "안동과 경주에 비해 대구는 접근성이 좋다. 서원이 중구 근대골목투어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 골목투어를 하러 왔다가 하룻밤 묵어가는 손님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구암서원은 한국관광공사의 '우수한옥체험숙박업체'(한옥 스테이)로 선정된 곳이다. 한국관광공사 영문 홈페이지에서 대구를 대표하는 한옥 스테이로 '구암서원'과 옻골마을 고택인 '백불고택'을 추천하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도 끊이지 않는다. 구암서원 전성희 관장은 "얼마 전 외국인들이 와서 자고 갔는데 '춥지 않냐'고 물어보니 '추워도 괜찮다'며 만족해하더라. 따뜻하게 데워진 바닥에 이불을 덮고 누워 코끝만 시린 그 느낌은 한옥에 자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웃었다.

글'사진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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